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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레저 여행가 Nov 16. 2023

여행 떠나고 싶은 나라로 해외출장 가는 법

출장 간 김에 사마르칸트 

비싼 돈 내고 어렵게 휴가내서 가는 해외여행. 여행 가고 싶은 나라에 회사돈으로 해외출장 가는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저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데, 업무 특성상 몇몇 고객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고객을 만나서 새로운 제안을 해야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국가를 집중적으로 가는 출장이 아닌, 다양한 국가로 출장 다니는 일이 많은 편입니다.  


언젠가 누가 물어봐서 헤아려보니, 십여 년 넘는 동안 35개국 정도를 출장 다녀왔더군요. 하지만 2018년도에 부탄과 방글라데시에 처음 출장을 가본 이후,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 출장이 어려워져서 한동안 그 숫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랬만에 새로운 고객을 만날 일이 생겼습니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고객이었습니다. 서남아, 동남아, 중동 등에 위치한 국가들은 가보았지만,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의 출장은 처음이었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 때 독립한 이중내륙국(Double-landlocked countries) 우즈베키스탄으로의 출장. 오랬만에 긴장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인천공항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공항을 오가는 항공편은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우즈베키스탄 항공에서 정기 편을 띄우고 있습니다. 비행시간은 갈 때는 7시간 남짓,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5시간 남짓입니다. 우리나라와 우즈베키스탄 시차는 네 시간.


저와 회사 동료는 대한항공 KE991편을 타고 타슈켄트에 도착했습니다. 저희를 데려다준 비행기는 에어버스사 A330-200 기종의 HL8212로, 일반적인 하늘색 대한항공 도장이 아니고 스카이팀 도장이 되어있는 멋진 항공기입니다. 그 멋진 항공기를 타고 도착한 우즈베키스탄은 제 개인적으로는 36번째 방문해 보는 국가입니다. UN기준 전 세계 국가 193개국을 모두 가보는 것이 버킷리스트 첫 줄을 것을 고려하면, 아직도 가야 할 국가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인 인천공항에 비하면 아담한 편인 타슈켄트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저희 회사의 우즈베키스탄 현지 협력업체의 사무실이 타슈켄트 중심지인 아미르 타무르(Amir Temur) 광장 근처에 위치해 있기에, 저희도 업무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아미르 티무르 광장 근처에 숙소를 예약하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깨끗하고 좋은 숙소는 시내에서 멀고, 시내에 위치한 깨끗하고 좋은 숙소는 비쌉니다. 회사 출장 예산을 고려하여, 저희 일행의 선택은 합리적인 가격에 타슈켄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오래된 호텔이었습니다.  




여튼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면서 협력사 사장님과 메신저를 이용하여 연락을 하였습니다.

"살라 말리쿰~ 미스터 가지프. 우리는 잘 도착해서 호텔로 이동 중이야. 내일 아침 9시에 너네 사무실에서 봐."

"헤이~ 닥터 강.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잘 쉬고 내일 봐. 그런데 우리 일정에 조금 변경이 생겼어."

"응? 일정 변경? 우리 일정이 어떻게 바뀌었는데?"

출장 중에 일정 변경은 늘상 있는 일입니다. 뭐 고객들 만나는 순서가 좀 바뀌었으려니~ 했는데 그것보다는 조금 더 피곤한 상황이 되어있었습니다.


원래 출장 일정 중에 M고객을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본사에서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만나기로 한 고객 담당자가 갑자기 현장 출장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왕 그렇게 된 김에.. 우리더러 자기네 현장까지 와서 세미나를 해주면 더 많은 엔지니어들도 참석할 수 있고 좋겠더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저도 고객 한 명이라도 더 데리고 세미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적극 동의 했지만 문제는 타슈켄트에서 M고객 현장까지의 거리. 고객의 현장은 나보이라는 도시에 있었는데, 이곳은 타슈켄트 서쪽으로 약 470km 떨어져 있었습니다. 급하게 변경된 일정이라 비행기나 고속열차를 이용할 수 없었고, 꼼짝없이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 구글맵으로 검색해 보니 소요시간이 편도 7시간 30분이라고 안내됩니다. 

'쓰읍~ 이동시간이 7시간 30분이면, 가다가 밥 먹고, 기름 넣고, 쉬면서 커피 한잔 하면 9시간은 넘게 걸리겠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고객이 오라면 어디라도 가야 하는 게 직장인의 숙명인 것을요.


그래서 급히 일정을 바꿔서 오전에 협력사 사무실에서 미팅을 갖고, 오후에 바로 현장으로 이동. 그다음 날 오전에 M고객사 현장에서 매니저들 및 엔지니어들 대상으로 기술 세미나를 하고, 오후에 다시 이동하여 타슈켄트로 복귀하는 것으로요. 참 먹고사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출장 중의 출장을 가야 하는 날 아침. 시차 문제도 있고, 걱정도 좀 되어서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젊었을 때는 와인 한잔 마시고 푹 자고 나면 그래도 버틸만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차적응도 더 힘들어집니다. 씻고 나서 호텔 조식을 하기 위하여 혼자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단체 관광객이라도 있는 것인지 식당 테이블은 만석이었습니다. 달걀 후라이, 빵, 소세지, 샐러드 등 몇몇 가지를 담은 접시와 커피 한잔을 들고 방황하다가 8인석 라운드 테이블에 반자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겨우 합석을 하였습니다.  밥을 서서 먹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도하며 한숨 돌리고 있는데, 잠시 후에는 저처럼 방황하던 아주머니 한분이 저의 맞은편 좌석에 합석하였습니다. 이러저러 일정들을 고민하며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는데, 단체 관광객들의 출발시간이라도 된 듯 갑자기 사람들이 우루루 식당을 빠져나갔습니다. 8인 테이블에 아주머니와 저 둘이 마주 앉아있는 상황. 출장 첫날, 계획에는 없었던 러시아인 아주머니와 둘만의 단란한 아침 식사를 하며, 왠지 모르게 저는 '세르게이 강'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레스토랑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정도가 흘러 주었더라면~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드네요.


식사를 마치고 함께 출장 간 직원과 함께 협력업체 사무실에 방문하여 미팅을 하였습니다. 1년 가까이 On-line에서만 보다가 실제로는 처음 만난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현재 상황 및 향후 미팅 계획에 대하여 협의하였습니다. 

"그래서 미스터 가지프, 내일 아침에 M사와 나보이에서의 미팅은 컨펌된 거야?"

"물론. 지금 미팅 끝나고 영업 담당 안나르씨와 함께 이동하면 돼. SUV 차량과 운전할 드라이버는 준비되어 있어."

"오케이. 잘됐네."

"나보이까지는 아마 5시간 좀 넘게 걸릴 거야."

"아~ 멀구나."


'5시간? 구글맵에서는 운전시간만 7시간 반이라고 했는데 이양반이 어디서 구라를...'이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입을 댓 발 내밀었습니다. 댓 발 나온 제 입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업체 사장님이 말을 이어갑니다.


"멀리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을 텐데, 미팅 끝나고 오는 길에 사마르칸트에 좀 들려서 구경 좀 하다와. 내가 드라이버에게 이야기해 뒀으니 알아서 데려다줄 거야."

눈치 하나는. 이래서 이 양반이 사장이구나 싶었습니다. 


사 마 르 칸 트 !

실크로드 시대의 중심지, 천년고도 사마르칸트. 중앙아시아에 간다면 반드시 들려야 할 도시 1위.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저의 구글맵 즐겨찾기에 저장되어 있는 도시입니다. 사실 이번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준비하면서 내심 가보고 싶었지만, 출장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던 그곳. 중년 출장자의 마음은 이리도 간사한 것일까요? 사마르칸트라는 한마디에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M사의 현장이 있는 나보이 까지는 약 470km. 서울 부산 보다 조금 더 먼 거리입니다. 이동하는 동안 차량에 연료도 넣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저녁 식사도 하였습니다. 결국 9시간 넘게 걸려서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진정으로 녹초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자칭 프로 출장러답게 노트북을 켜고 다음날 프레젠테이션 할 자료를 수정하고, 발표할 내용을 다듬고, 몇 번 영어 발표 연습을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원래 만나기로 했던 관리팀 매니저 외에 엔지니어팀 리더를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저희 기술 세미나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저의 유창한 콩글리쉬 프레젠테이션 중간중간 질문들이 오갔습니다. 날카로운 질문에 잠시 긴장도 되었지만, 청중들이 저의 발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또 이렇게 관심을 가져준 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그 바람에 예상 시간을 훌쩍 넘어서 두 시간가량 세미나가 진행되었고, 저는 그리 덥지도 않은 회의실내에서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마지막으로 마지막 멘트를 날렸습니다.

"긴 시간 동안 제 발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질문 있으십니까?"

엔지니어팀 리더께서 말씀하십니다.

"닥터 강.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좋은 발표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솔루션인것 같네요."

"아닙니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다시 불러주십시오."

"회사 관리팀에서 '만약' 승인해 준다면 가능한 한 빨리 우리 회사에 적용해 보고 싶네요."

그때 관리팀 매니저가 끼어듭니다.

"'만약'이라는 말은 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 솔루션을 도입하면 우리 회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견적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곳 현장의 조건을 고려하여 최적의 견적을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다시 뵙고 싶네요~"

미팅은 생각보다 더 성공적이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나서, 고객과 다음을 기약하는 덕담을 나누고 나서 꿈에 그리던 사마르칸트로 향했습니다.


저의 구글맵에서 별표로 저장되어 있는 도시. 이름만 들어도 뭔가 신비한 느낌이 드는 사마르칸트. 정말 어렵게 도착했습니다. 여행자 신분이었다면 며칠을 머물렀겠지만, 아쉽게도 출장자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넉넉지 못합니다. 지구인이든 화성인이든 누구에게 묻더라도, 사마르칸트에서 한 곳만 볼 수 있다면 그 대답은 당연히 레기스탄(Registan) 일 것입니다. 붐비는 주차장에서 겨우 차를 주차하고 꿈에도 그리던 레기스탄 광장을 마주했습니다.


드넓은 모래밭에 우뚝 서서 정교하면서 아름다운 레기스탄. 페르시아어로 '모래의 땅'인 이곳은 정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매표소에 가서 입장권을 구매하였습니다. 외국인은 50,000 슘. 우리나라 돈으로 오천 원이 조금 넘는 돈입니다. 입장료에는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내국인들은 훨씬 저렴한데, 육백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살짝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약 두 시간가량 이 아름다운 건물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눈에 담았습니다. 야경은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가야 할 길이 멀어서 아쉽지만 차에 올랐습니다.  

 


사마르칸트를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두고 타슈켄트로 향하는 길. 앞으로 당분간 제 업무의 최우선순위는 M사의 요구에 대하여  F/U(Follow Up)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드시 사업으로 연결하여, 회사에는 이익을 가져다주고 개인적으로는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도시에 자주 와야겠다는 사심 가득한 생각이죠.




꼭 머물러 싶은 곳에서 마음껏 머물 수만은 없는 것이 출장 여행자입니다. 하지만 또 내 돈은 한 푼도 안 들이고 떠날 수 있는 것이 출장 중의 여행, 블레저 여행(Bleisure Travel)입니다. 대부분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 출장자의 숙명입니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 가보고 싶은 곳을 만들어 두면 됩니다!!! 참고로 제 구글맵 즐겨찾기에는 인구 1,000명 이상 거주하는 마을 중 최 북단이라는 롱위에아르비엔(Longyearbyen)부터 남미 대륙 최남단까지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출장을 가더라도 가보고 싶은 곳이 꼭 있습니다. 너무 간단한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시들 대한민국 직장인 출장러들, 오늘도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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