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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레저 여행가 Dec 27. 2023

아빠와 딸 VS 엄마와 아들

2대2,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싸움

저희 집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달랑 4명인데, 물과 기름처럼 갈라져 2 대 2로 첨예하게 갈라져서 대립했던 이슈가 하나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치약을 짜는 문제입니다. 탕수육 찍먹이냐 부먹이냐도 아니고, 패키지여행이냐 자유 여행이냐도 아니고, 브람스의 신고전주의냐 바그너의 낭만주의 냐도 아닌 치약 짜는 문제.


저와 딸네미는 양치를 위해 치약을 짤 때 치약의 맨 끝부분부터 차근차근 압축하여 치약을 짜냅니다. 반면 아네와 아들네미는 치약이 손에 잡히는 데로 아무 데나 꾹 눌러 짭니다. 이게 뭐 그리 첨예하게 대립할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막상 당해보면 참 짜증이 나는 문제입니다. 저와 딸네미의 입장은 치약을 끝에서부터 치약을 차근차근 짜는 게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 끝에서부터 눌러서 짜야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고, 보기도 더 좋지 않느냐는 입장이구요. 아네와 아들 입장은 아무 데서나 눌러짜 쓰다가 마지막에만 잘 짜서 깔끔하게 쓰면 되지 별 걸 다 가지고 시비를 건다 라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아빠와 딸 VS 엄마와 아들' 대결 구도에서도 예상하실 수 있겠지만, 이 문제는 구조적으로 이미 두식구 시절부터 잠시 이슈화가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힘의 논리로  인하여 잠잠해졌었는데, 20년 가까이 흐른 이제 와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논란이 된 것이죠. 결혼하신 분들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뭐  장가갔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고요- 꽤 오랜 기간 연예기간을 거친 커플이라도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문화적 차이로 상당한 충격을 느끼게 됩니다. 두 명의 성인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서 경험해 온 문화의 차이가 생각보다 커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까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0년 전 신혼여행을 마치고, 알콩달콩 신혼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가전제품, 가구, 이불, 생활 용품, 식기 등 거의 모든 것이 새것인 곳. 서로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마련한 둘만의 아지트. 아직은 우리집 이라고 하면 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곳이 생각나지만, 아무튼 이제부터는 이곳이 우리 집. 하지만 꿈만 같은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채 며칠 되지 않아서 저는 화장실에서 양치를 할 때마다 고뇌를 하게 되었습니다. 길쭉한 치약 튜브의 중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쥐어짜져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도 어색하고 불안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튜브 끝에서부터 차례로 눌러서 치약 튜브의 앞쪽과 중간 부분은 빵빵하고, 끝쪽이 홀쭉한 형태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양치를 하려고 보면 치약 튜브는 다시 아무렇게나 쭈글쭈글 한 모양이 되어 있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참다못해 큰 결심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여보~ 할 말이 있는데..."

"응? 할 말? 무슨 이야기인데 이렇게 폼을 잡아? 심각한 얘기야?"

"음.. 자기..  앞으로 양치할 때 치약 튜브 뒷부분부터 눌러짜서 사용했으면 하는데.."   

아내가 참 살다 살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대답을 했습니다.

"왜 그래야 하지? 아무 데나 눌러서 치약을 짜서 쓰면 되는 거 아냐?

"아니.. 뭐 안될 건 없는데.. 보기 안 좋잖아."

"그래? 뭐 별것도 아니네. 난 그냥 짜서 쓰던 데로 할게. 오빠도 편할 데로 해."


이렇게 상황은 종료되었고, 이후 1년쯤 뒤에 새로 가족으로 합류한 아들 녀석도 잡히는 데로 치약 튜브를 잡고 쭉 짜서 사용을 했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화장실에 아무렇게나 뒤틀어진 채 놓여있는 치약을 보며, 너무도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불완전하게 닫혀있던 뚜껑을 어느 겨울 첫눈 내리던 날 사춘기 딸네미가 터뜨려 버렸습니다.

"아 짜증 나. 누가 이렇게 치약을 아무 데나 눌러 짜서 쓰는 거야!"

"저게 비싼 밥 해 먹였더니 뜬금없이 왜 난리야?"

"역시 범인은 엄마 맞지?"

"야!! 이빨이나 깨끗이 닦지 갑자기 왜 시비 터는데?"

"뭐야~ 오빠도 아무 데나 눌러짜?"

"아무 데나 짜도 치약만 나오면 되지 뭐가 문젠데?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네."

"나는 그렇게 치약을 아무 데나 쥐어짠 거 보면 마음이 너무 불편해. 이거 나만 그런 거야?"

"그래~ 동생아!! 너만 이상한 거야~"

"그래 네 오빠 말이 맞아. 너 요즘 사춘기라 그런지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민감하게 굴더라?"

"세상에 신경 쓰고 골치 아픈 일이 쌔고 쌨는데 그깟 치약 짜는 거 가지고 성질이냐?"

"힝~~ 그래도 나는 이빨 닦을 때마다 너무 신경 쓰인단 말야~!! 내가 이상한 거야? 정말 나만 그래? "


사태를 확전 시키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있었지만, 딸네미가 혼자 필마단창(匹馬單槍, 한 필의 말과 한 자루의 창으로 간단히 무장하고)으로 강력한 엄마오빠 연합군을 맞아 고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다 보니 가장으로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20년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내장 깊숙이 묻어두었던 이야기.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을 지키기 위해 참고 참아왔던 그 한마디를  토해냈습니다.  


"나도 불편해."


그리하여 2대 2. 



튜브 아무 데나 눌러짜도 치약만 나오면 되는 자들과 끝부터 차근차근 짜서 써야 마음이 편한 자들의 대결. 하지만 싸움의 승부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리 치약 짜개 등을 사서 치약 튜브 끝에 달아둬 봐야 마음 내키는 데로 아무 데나 쥐어짜 버리는 사람의 무지막지한 행위는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매번 양치할 때마다 치약을 대신짜 줄수도 없고 말이죠.


하지만 이 대결 이후 사태가 극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치약 튜브의 찌그러진 모양이 남편과 딸의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한다는, 본인 입장에서는 단 1%도 이해가 안되는 황당무계한 불평. 하지만 현모양처를 자처하는  아내가 해결책을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펌프형 치약 구매. 저는 이런 게 있는지 몰랐는데 너무 편리하고 좋았습니다. 치약도 펌프를 가볍게 눌러 편리하게 원하는 만큼 짜서 이용할 수 있고, 황당한 이유로 생겼던 가족 구성원 간의 앙금도 사라졌습니다.  


속으로만 꿍~하고 있지 말고, 서로 터놓고 이야기 하고 고민하면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뭐 이런 교훈을 얻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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