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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와따 Jan 14. 2023

저는 커피와 같은 사람입니다

면접, 1분 자기소개

앨범에 있는 바랜 사진 같은 옛날이야기입니다. 


요즘은 대기업들도 공채를 폐지하고 직무 중심으로 수시채용을 하는 분위기다. 과거 공채 면접장은 전쟁터와 같은 긴장감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인사 담당자로서 오랜 시간 현장에서 지원자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면접장으로 청년들이 줄을 맞춰 들어온다. 미소를 지으려고 애를 써 보지만 긴장한 모습을 지울 수 없다. 걸음걸이부터 어색하다. 정장에 맞춰서 오랜만에 꺼내 신었거나 새로 산 구두가 어색하겠지....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첫 스타트를 끊어야 하는 지원자의 심장 뛰는 소리가 면접관 자리까지 들린다. 나머지 지원자들의 심장도 함께 화음을 넣는다. '쿵쾅 콩닥 두근두근' 작은 음악회 같다.      


면접을 시작하면 자기소개부터 시킨다. 별 의미 없을 수도 있지만, 일종의 아이스브레이킹이다. 초면에 다짜고짜 "우리가 당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보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원자들은 준비해 온 원고를 읽듯이 입을 떼면서 낯선 공간에 대한 긴장을 풀게 된다. 면접관들은 그 사이 첫인상으로 빠르게 지원자의 특성을 잡아낸다. 보통은 입사 지원서를 뒤적이며 질문거리를 찾고, 특이 사항에 체크를 하는 시간이다. 지원자가 '안녕하십니까' 첫마디를 꺼내는 순간에 이미지는 어느 정도 결정이 된다. 그리고 거의 바뀌지 않는다. 나중에 알았다. 이것이 메라비언의 법칙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지원자들은 열심히 내용을 준비했지만 실제 면접관들은 겉모습과 목소리에서 93% 정도 이미지를 판단한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 


메라비언의 법칙 :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시각과 청각이 각각 55%와 38%, 말의 내용은 7%에 불과하다. 인상과 표정, 옷차림, 걸음걸이 등 눈으로 보이는 것에서 절반 그리고 목소리에서 나머지의 이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정작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주는 영향은 7%다.



나는 이미 지원서에 대한 파악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 코, 입, 그리고 표정과 자세, 헤어스타일을 보면서 지원자의 기질을 느끼려고 애쓴다. 어쩌면 직업병인데 맞춘 적은 별로 없다. '눈썹이 짙고 광대뼈가 나왔네' 활동적이고 목소리가 클 것이다. 영업직무가 적합해 보이는데..... 틀렸다. 내성적인 성향으로 회계직무 지원자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까지 신입사원 채용에 대한 개똥철학을 내려놓지 못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이 커서 될 모습까지 그려보아야 한다'라는 사명감이 있었다.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지원자는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한 건지 온몸의 힘을 눈에 집중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정말 미안하다.      


면접관 입장에서야 간단하게 몸을 풀자는 생각이지만, 지원자들은 입장이 다르다. 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서 캐릭터를 어필하겠다고 난리도 아니다. 보고 있으면 '우리가 애들한테 몹쓸 짓을 시키는 건가' 죄책감도 든다. 이제는 이런 모습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직무중심의 채용이라는 인식이 공유되면서 이런 쓸데없는 낭비는 줄었다.     


<구호를 외치는 지원자>

     

가장 흔했다. 신입사원은 패기라는 공식은 여전하다.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저는 세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라고 외치면서 손가락을 펼쳐 정권 찌르기 하듯이 힘차게 뻗는다. 영업담당 면접관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거긴 곧 죽어도 어깨 피고 우렁찬 목소리로 큰 걸음을 걸어야 하는 곳이다. 목소리 크다고 영업 잘하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사회는 신입에게는 패기를 요구했을까?    

  

<노래를 불렀던 지원자>      


면접관들의 주목을 받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전국노래자랑 예선 탈락했다면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자청한다. 반대로 어느 회사는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노래를 시켰다가 취업 포털 게시판에서 갑질이라고 논란이 되기도 했다. 용기가 대단하다. 트로트 한 소절을 개사해서 입사 의지를 보인다. '당신이 나를 불러준다면 무조건~ 무조건이야~~' 그 짧은 시간에 나머지 세 명은 박수를 쳐 준다. 환상의 호흡이다. 서로의 애환을 알고, 동료애가 있어서 조직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의사표시 일건대. 왠지 노래는 처연하게 들린다.  

    

<머릿속이 하얗게, 몸은 얼음이 된다>

    

긴장을 풀지 못하는 성격이다. 안타깝지만 그것도 능력으로 평가된다. "저는 마라톤 풀코스를 세 번 완주한 끈기 있는 지원자입니다"  그런데 눈동자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천정 쪽을 보면서 점점 흰 자위를 드러낸다. 눈에서 흰색이 많이 보이면 머릿속도 흰색이라는 의미다. 결국 눈의 흰자를 다 들어내고 침을 꼴깍 삼킨다. 순식간에 공포의 침묵 속으로 면접장이 빨려 들어간다. '긴장 푸시고 천천히 하면 됩니다' 달래 본다. 숨을 한껏 마시고 다시 시작한다. 안 된다.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오르고 호흡도 가쁘다. 끊어진 곳부터 이어가질 못하고 처음 '안녕하십니까~'부터 시작한다. 스크립트를 통째로 외운 부작용이다. 한 번 더 끊기고서 세 번째 간신히 마쳤다.      


짓궂은 면접관이 툭 던진 말. "마라톤이 아니고 자기소개를 세 번 만에 완주했네요. 허허허. 긴장 풀고 합시다" 그 모래알 같은 한 마디는 바윗덩이가 되었고, 지원자는 그 돌과 함께 가라앉았다. 면접 내내 긴장을 풀지 못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어... 아... 음을 연발했다. 고개를 떨구고 면접장을 나서는 뒷모습에서 저녁 쓴 술자리가 스친다.  이런 경우 면접관은 준비부족으로 체크한다. 연습한 답변에서 버벅거리는 건 긴장을 풀지 못한 탓이지만 할 수 없다. 여긴 시험을 보는 곳이다.  

    

마술을 선보였던 지원자도 기억에 남는다. 아무 의미 없는 퍼포먼스다. 그저 나를 기억해 달라는 가쁜 몸짓인데 면접은 일 잘할 수 있는 지원자를 뽑는다는 기본을 잊은 준비라 아쉽다.      

자신은 커피처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테)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지원자는 합격을 했지만 연수원 입소하는 날 불참했다. 바닐라라테가 되었을까?      


20년 넘게 살아온 인생을 1분에 소개하라면 무리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은 지원서의 스펙에 녹아있다. 거기서 한 토막을 꺼내면 된다. 내가 지원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 핵심이 되는 경험이나 역량을 소개하면 된다. 쇼를 할 일이 아니다.     


나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그런 나를 남에게 소개한다는 건 더욱 힘든 일이 분명하다. 어쩌면 우리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달려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이유도 모른 채 헉헉 거리며 달린 것은 아닐까?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누군가의 믿음에 따라서 말이다. 국영수 공부를 열심히 한다. 경제, 상식, 역사를 공부하고 공기업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필요도 없는)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도 준비해야 한다. 직무역량이나 NCS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정작 나에 대한 공부는 할 틈이 없는 세상이다.


사진: Unsplash의 Sage Frie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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