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면서도 어두운 이 영화가 나는 반갑고 또 괴롭다.
[숨이 막힌 도베르만]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장을 보고 돌아와 보니 집에서 기르는 도베르만이 목에 뭔가 걸려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개를 동물 병원에 맡기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전 다녀온 동물 병원의 수의사였던 그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당장 집 밖으로 나가세요!"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제 말대로 하시고 당장 옆집에 가 계세요. 곧 갈게요."
수의사는 아주머니 질문에 대답 않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놀랍고 궁금했지만 수의사가 시키는 대로 이웃집에 갔다.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경찰차 4대가 달려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집 앞에 섰다. 경찰들이 권총을 뽑아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겁에 질린 채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수의사가 도착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도베르만 목구멍을 검사해보니 거기에 사람 손가락 두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도베르만이 도둑을 놀라게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곧 피 흘리는 손을 움켜쥐고 공포에 질린 채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을 잡아냈다.
이 이야기는 드라마작가 교육을 받을 때 처음 들었다. '플롯'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사례였다. 일어났던 일을 차례대로 나열했다면(도둑이 들었다ㅡ도베르만이 도둑의 손가락을 물었다ㅡ집에 돌아온 주인은 개가 목에 뭔가 걸려 숨을 쉬지 못하는 걸 발견하고 수의사에게 맡겼다ㅡ수의사는 도베르만의 목구멍에서 손가락 두 개를 발견하고 개가 도둑을 물었을 거라고 추측한다ㅡ주인에게 연락해서 당장 나오라 말하고, 경찰에 신고한다ㅡ경찰이 와서 숨어 있던 도둑을 체포한다) 맹숭맹숭했을 이야기가, 처음부터 긴장감 넘치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끝까지 몰입감을 주는 강렬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를 만들 때마다, 글을 쓸 때마다 배운 대로 해보려 애썼지만 사실 잘 안 됐다. 그러다 도베르만 이야기까지 기억에서 사라졌는데...
<소년의 시간>을 보다, 팍! 하고 떠올랐다. 이거 완전 도베르만이네!
도대체, 뭐야,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야, 왜 이러는 거야, 궁금해서 빠져들고 완전히 몰입된다. 이야기를 뒤죽박죽 꼬지 않고도, 정신없게 하지 않고도, 어디를 시작으로 누구의 시점으로 들려주느냐에 따라, 이렇게 멋지게 풀어갈 수 있구나, 소름의 시간이었다.
네 개의 에피소드를 각각 한 번에 촬영하는 원테이크 기법을 썼다.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봤는데, 초반엔 뭔가 어색한데... 하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장면이 끊어지지 않고 쭈욱 이어지고 있다는 걸. 그때부터 나는 신경이 쓰여서 머릿속에 불이 났다.
장면이 시작되면 영화의 시간이 곧 실제 시간이니까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로 느껴졌고, 내가 그 자리에 정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분명 이건 짜여진 극영화인데... 운전해서 이동하고, 학교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하는데... 저러다 딱딱 안 맞으면 어쩌나? 저거 다 어떻게 맞췄나? NG라도 나면 어디서부터 다시 찍나? 몇 번이나 다시 찍었을까? 그런 생각을 머리 한쪽에서 한참 하고, 한편으로는 현장감에 절어서 이야기 자체에 정신이 아득하고 숨이 막혔다.
이거 정말, 플롯을 떠나서 주제의식을 떠나서, 대단한 드라마인데! 3단 콤보로 감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시대에 맞는 화두를 제대로 던졌다. 디지털 시대에, AI 시대에, 어른부터 아이까지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틈새시간까지 사로잡힌 시대에, 우주만큼 넓고 아는 게 없는 사이버세계에서 상상 못할 일이 벌어지는 시대에, 그에 반해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너지고 소통이 단절된 시대에,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집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어진 시대에, 남성성이, 페미니즘이 왜곡된 시대에,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어른으로서 무얼 해야 하나? 아이들은 어떻게 외롭지 않게 자랄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과연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모든 물음표를 안고...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이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들딸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과연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보는 동안 차분해지면서도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가 있다. 물음표로 마친 이야기에 빚을 진 것 같은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 흥분이 가라앉고 기억이 흐릿해져도 거기서부터 자꾸 뭔가 자라나는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를 본 지 두 달이 지났다. 나는 정리는커녕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
앞으로 이 드라마를 몇 번이나 곱씹게 될까. 몇 번이나 답을 고쳐 쓸까. 몇 번이나 공명하며 좌절해야 할까. 따스하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했던 영화의 끝처럼, 무너지면서 서로 단단히 붙들었던 소년의 부모처럼, 그들이 체념하면서도 희망적이었던 것처럼, 빛나면서도 어두운 이 영화가 나는 반갑고 또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