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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Nov 08. 2024

실례합니다. 그쪽의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합니다


호기심이 많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궁금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불편하다. 물론 회사에서는 그런 사안들에도, 옛날 승용차 앞머리에 올려둔, 하루 죙일 고개 끄덕이는 불독처럼 적극적으로 듣고 열렬히 배우는 건 비밀. 흠 근데 저 불독에서 살아온 세월이 또 나오네…


어쨋든, 내 바운더리 안에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한 내가 궁금해하는, 특이한 것이 있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는 음악이고, 굳이 어려워지자면 하나의 장르. 바로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듣는 타인의 음악이다.




나는 근 한달? 컨디션 좋으면 근 두 달? 내의 어떤 날 그날 입은 옷으로 떠올린다. 옷이 내게는 떠올림의 스모킹건인 것.


옷이 특정한 날의 기억을 선사하는 소품이라면, 음악은 옛 하루를 넘어 한 시절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 바람이다. 방향으로 따지면 역풍이지만, 그 쓰임으로 치면 순풍인. 타임머신의 열쇠 같은 거.


거리 위 숱한 타인들의 음악을 궁금해하는 건 그래서다.


안다. 진짜 쓰잘데기 없는 궁금증이라는 거. 알아도 궁금하다. 그리고 또 안다. 나와 같은 걸 궁금해해 본 적이 그래도 한 번씩은 남들에게도 있을 거라는 것.


불과 몇 시간 전 출근길만 해도 나는 그랬다. 안국역 출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 앞에 탄 저 사람은 지금 무슨 노랠 들을까? 변태같이 말이다.


플레이 리스트에 분명 존재할, 저 사람을 회상의 넝쿨로 한 순간 옮겨놓는 어떤 곡은 무어려나. 그리고 저 사람은 그걸 들을 때 어떤 걸 느끼려나. 그리움일까, 후회일까, 원망일까 아니면 행복일까.




귀에 손톱만 한 이어폰을 툭 얹어놓는 작은 행위와 무심하게 흘러나오는 하나의 음악이 결합되었을 때, 그 즉시 소시민 1에 불과한 나 자신이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될 때.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무언지, 그리고 왜 어떤 시절을 떠올리기에 그런 건지. 한 번 쯤은 알고 싶다.


이렇게만 보자면 세상 변태 오지라퍼 같겠지? 실은 이건 나를 꽤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인 걸 아무도 모를 테니까?


어째서 제3의 영역을 궁금해하는 이 영양가 없는 호기심이 나를 튼튼하게 하느냐면, 그 호기심이 심심치 않게 나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저 많은 사람들도 이미 흘러가 고여있는 시절 어딘가를 누비고 있겠구나. 어쩜 우린 다 비슷비슷한 환희와 원망, 후회와 처연함, 즐거움 따위로 이뤄진 희로애락 속에 살고 있구나 싶어 말이다.


이게 교통수단인지 피로수단인지 모를 사람 시루 같은 지하철에서도, 거리에 환한 건 가로등과 간판 네온뿐인 늦은 퇴근길에서도, 왁자지껄 오늘 하루 잘 견뎌냈다는 격려와 응원이 넘쳐나는 선술집에서도.


자의로 타의로 흘러나오는 노래에 남들에게 티 한 번 안 내고 열심히 지나온 세월 한 구석을 골몰하는 데에, 꽤 많은 우리가 열심이라는 것이, 인생은 혼자여도 감정엔 혼자가 아니라는 뜻인 것만 같아 나는 한 번씩, 피식 웃는다.




- 실례합니다. 제가 위와 같은 이유로 블라블라, 지금 듣고 계신 음악이 궁금해서요. 혹시 어떤 노래 들으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물었을 때,


- 영어강의 듣는데요? 라고 하면 어떨까.


아 전에 만났던 분이 외국인이구나. 아 외국에서 사셨던 시절이 그리우신가보다. 아 외국에서의 시간 갖기를 바라시는군요?…


아… 이어폰 꽂았다고 모두가 다 음악을 듣는 건 아니었네요!!!


오케이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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