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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vrin Dec 22. 2023

9. 운칠기삼

나이를 먹는 것은 퍽 멋진 일이다.


안티에이징과 노화방지(그 말이 그 말이지만 단어가 가진 어감이 확연히 다른 게 재미있어 두 단어를 붙여서 자주 사용하곤 한다.)가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겠지?


올 한 해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보단 안타까움을 더 많이 주었다.

내가 노력한 것들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고, 나를 위해 희생하고 기다려 준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도 없어 속이 참 많이 상했었다.

가을이 유난히도 길었던 올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버거워 자주 밖으로 나돌았다.

결국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밖으로 나가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어릴 때의 나였다면 모든 것을 다 내팽개쳐두고 또다시 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버거워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길 모두 내려두고 왔다.

열심히 살지 않는 자신에 대한 책망과 그런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와 풀리지 않는 인생에 대한 원망 등을 모두 안고 들고 살아가기엔 체력이 안 따라주는 느낌.


눈물을 펑펑 흘리다가도 세탁기 완료음에 스스로의 빨래를 널어야 하는 게 어른의 삶이다.


어른들이 자주 그랬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

어릴 땐 인생의 모든 결과를 운에게 떠맡겨 버리는 그 태도가 참 싫었는데.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당장 1분 뒤의 상황도 모르는데 어떻게 인생을 뜻대로 살 수 있을까? 좋은 일은 내 재주로 해낸 것이고 나쁜 일은 운이 나빠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니 올해는 운이 나빴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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