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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Jan 14. 2024

여행의 헛헛함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일상의 탈피처로서 여행이 최고의 안식일 거라 여겨왔다.

교사를 직업으로 택한 첫 번째 이유가 '방학 중의 여행'이었기 때문이었을 정도였으니. 

-사실 제 일의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유년 시절, 내 삶의 팔 할은 독서였으니, 책을 읽고 살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로서 행복했으니까.-


실제로 나는 일 년에 최소 두 번씩 짧고, 긴 여행을 다니며 살아가고 있다.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내 경우에는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서 '새롭고 낯선 곳에서의 방랑자 같은 유유자적함'을 즐기기 위함이었기에, 주로 국내보다는 해외를 목적지로 택했었다.

우연히 떠나게 된 첫 목적지가 유럽 8개국이었기에, 여행지에 대한 눈높이가 꽤나 높아져있었다.


유수한 세계 문화 유산과 역사와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느껴지는 곳.

아름다운 비엔나의 음악이 흐르는 거리와, 빛나는 미술 작품들을 곳곳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파리와

지중해의 빛을 받은 신선함으로 만든 맛있는 먹거리를 즐길 수 있었던 피렌체,

세계 최고의 공연을 라이브로 볼 수 있었던 런던의 웨스트엔더 거리,

스쳐가는 창밖으로 알프스를 관람하며 명상에 잠길 수 있었던 스위스 열차 여행... 등

그 뒤로도 유럽은 십 년에 한 번은 갔었지만, 여전히 갈 때마다 감동적이긴 하다.


하지만 뭐랄까. 

그런 환상적인 꿈같은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돌아왔을 때 느끼는 허탈함도 조금씩 쌓여갔다.

여행은 돌아올 집이 있어 떠나는 것이고, 돌아왔을 때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에 더 소중한 깜짝 이벤트같은 것이라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아니, 그.런.데.

어째서 이제는 여행을 떠나고 준비하는 것도 일처럼 느껴지게 된 걸까.

일본 여행에서 거리에서 팔던 다코야키를 먹고 느꼈었던 감동도, 이제는 예전같지 않고,

오히려 동네 다코야끼집을 발견할 때 더욱 기쁘다.

'원산지', '본고향' 이런 것들이 무색하게 세계적인 체인점이 난무하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맛집 여행은 그렇다쳐도, 

풍경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동도 예전처럼 짜릿하지 않다.

웬만한 유명 관광지는 유투브든, 잡지든, 여행 카페의 후기에서든 이미 보았던 광경들이고,

직접 그 풍경을 보기 위해 그곳까지 가야하는 수많은 경로를 직접 따라가기에는 벅찬 것도 사실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일 텐데, 어쩌다 불편함이 귀찮아진 것일까.


유명 여행 유투버들이 모여 떠난 세계 일주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방송을 진행하던 진행자 중 한 명은 여행을 혐오하다싶이 하던 분이었는데,

어쩐지 점점, 여행이 주는 즐거움보다는, 여행을 다녀와서 느끼는 피로함과 실망감이 커져서 

집에서 여행 프로그램이나 보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여행에도 권태기가 있는 걸까.

집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에 빠져버린 걸까.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이 있기는 하다.

일 년의 절반 가량이 겨울이며,  국토의 약 79%가 빙하, 호수, 용암지대라는 북유럽의 아이슬란드. 

자살율이 40%라는 최악의 수치를 기록한 나라. 

그곳 주민들은 춥고 험난한 자연 환경 속에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는 걸까?

그들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느끼는 여행의 헛헛함은

짧게 스쳐가는 관광객으로서의 단발적인 방문이 내 삶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나 보다. 

단순한 관광과 즐거움을 위한 놀이로서의 여행은 내가 추구하는 여행의 방향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닌, 저 별 어딘가의 낯선 장소에서의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다.

다양한 지역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민낯이 보고싶다.

그리고 그들 속에 섞여서 삶의 진정성을 발견하고 싶다.


여행과 삶은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삶이라는 여행에는 목표가 있고, 지속성이 있고, 속도도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여행에는 어떤 목표가 있는 걸까?

다음 여행에서 나는 어떤 여행자가 되어, 그 여행 속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지구별 여행자. 

관광이 아닌 진짜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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