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레터의 ost를 듣는다.
'그의 웃음'으로 시작해서 '작은 행복'으로 끝맺는,
숨막히도록 고요하고 평화롭고 차분한 음악.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것들은
늘 어릴 적 기억을 상기시킨다.
눈 사람을 만들던 기억,
하얀 눈을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이브.
눈이 소복히 쌓인 길을 제일 먼저 밟으며 걷는 푹신함.
다가오던 설날과
기대되던 새 학기의 두근거림.
긴 겨울 방학 동안
따뜻한 집안에서 군고구마 먹으며
지칠줄 모르고 끊임없이 보던 만화영화들.
그리고 스무 살 언저리 무렵,
시리도록 흰 눈이 쌓인 거리를 배경으로
내 마음을 한껏 슬픔에 빠지게 했던 첫사랑에 관한 영화,
love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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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ost 중에서 특히 'letters of no return' 이라는 곡을 좋아한다.
왠지 모르게, 중요한 순간들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더라.
그리고 간절히 바랐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많더라.
이를 테면, 이루어지지 않았던 첫 사랑 같은 것들 말이다.
아마,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러브레터를 받아 서로 원하던 답장을 주고 받고
그럭저럭 평범한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현실에 맞닥뜨리며 살았더라면
첫 사랑의 아련함이나 애틋함 같은 것들도 서서히 잊혀져 갔을지 모른다.
이루어지지 않았던 간절한 바람들은
살면서 잊혀진 줄 알았던 순간에 다시 찾아 온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이 지나더라도
그 시절의 아름다운 우리들 모습은 변함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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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영화의 촬영지라는 '오타루'에 갔었다.
정말이지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모아놓은 것 같은 동화같은 곳이었다.
끝없이 내리는 하얀 눈과
천연한 순수함을 지닌 수많은 오르골들의 향연.
일몰 이후의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온 세상에 퍼붓던 눈.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을 내며 거리를 지나다디던 엔틱한 택시들.
추운 눈보라를 피하려고 서로를 붙잡고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하루 종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던 달콤한 과자와 디저트 가게들.
작은 우체국 앞에 놓은 벤치의자와
그리 크지 않은 기차역 안에 벤치들.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그 곳에서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리니,
'이런 곳에서라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겠다.' 싶었다.
순결한 겨울의 오타루.
문득 나의 열아홉, 스무살이 떠오르게 하는 공간.
'오갱끼데쓰까'.
그 한 마디에 포함된 수 많은 감정들이 휘몰아친다.
그리움,
미안함,
보고싶음,
아련함,
간절함,
애틋함,
소중함,
슬픔,
그리고
따뜻함.
겨울은 시리도록 차갑지만,
그렇기에 더욱 인간적인 온기가 그리워지는,
순결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