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L파트너스의 크린토피아 매각 스토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3년전, 굴지의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크린토피아'를 인수했을 때, 시장의 시선은 엇갈렸다. 한쪽에서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전통 산업의 강자들, 다른 한쪽에서는 '런드리고'와 같은 신생 테크 기업에 밀려날지 모를 세탁업을 보았다. 그리고 2025년, JKL파트너스는 크린토피아를 또 다른 사모펀드인 스틱 인베스트먼트에 성공적으로 매각하여 약 5천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거두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크린토피아는 스스로를 '플랫폼'으로 증명해냈다. JKL파트너스가 연출한 이 성공적인 드라마는, 한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재해석하고 그 잠재력을 현실로 바꾸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진입장벽의 재발견
JKL파트너스가 인수 후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크린토피아의 B2C프랜차이즈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시장이었다. 바로 호텔과 병원에서 나오는 막대한 양의 세탁물, 즉 B2B시장이었다. 이 시장은 피와 화학물질 등으로 인해 세택의 난이도가 매우 높고, 국가의 엄격한 허가를 받아야만 진입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JKL은 이 진입장벽의 가치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들은 2023년, 호텔 세탁 전문업체 '크린워시'와 '크린토피아스테이'를 연이어 인수하며 B2B영업망을 단숨에 흡수했다. 특히 크린워시 인수는 단돈 3만원에 이루어졌다. 이는 부채가 더 많은 회사를 떠안는 조건으로 핵심 라이선스와 영업권을 확보한, 사모펀드의 정석과도 같은 영리한 플레이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기도 안성에 병원 세탁물 전용 케어센터를 설립하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이 투자는 재무제표상 유형자산 약 200억원의 증가로 나타났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 유명 대학의 세탁물을 거의 전담하게 되는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이라는 더 큰 자산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체계적인 전략의 결과는 경이로웠다. 인수 당시 약 960억 원이던 매출은 2024년 말 약 2,800억원을 넘어섰고 영업이익도 310억으로 7배 이상 폭증했다. 매출의 급증은 대부분 진입장벽이 높은 B2B시장에서 비롯되었다.
미래를 향한 투자 : 디지털과 브랜드의 재정의
JKL은 B2B시장이라는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래를 위한 투자도 잊지 않았다.
'런드리고' , '세탁 특공대' 와 같은 비대면 서비스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약 30억원을 투자하여 자체 앱을 개발하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했다. 이는 당장의 수익보다는 미래 고객 경험을 위한 방어적인 투자에 가까웠다.
호텔 하나를 계약하는 것이 수백명의 고객을 유치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냉철한 판단 아래, 자원을 B2B에 집중하되 미래의 변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것이다.
동시에 기존의 초록색 매장을 세련된 파란색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이는 '동내 세탁 편의점'이라는 낡은 이미지를 벗고, 신뢰할 수 있는 '토탈 케어 서비스'로 거듭나기위한 전략이었다. B2B사업이 궤도에 오른 후, 새롭게 개발된 앱과 세련된 브랜딩을 무기 삼아 다시 B2C프렌차이즈 확장에 힘을 싣는, 장기적인 포석이었던 셈이다.
결과로 증명된 가치 : 3년 전의 질문에 대한 대답
3년 전, 우리는 '1,800억 원의 크린토피아와 4,000억 원의 런드리고'를 비교하며 미래의 승자를 예측해냈다.
당시에도 안정적인 프렌차이즈 모델을 가진 크린토피아의 손을 들어중젔던 예측은, 이제 결과로 증명되었다.
런드리고는 비대면 세탁이라는 혁신적인 소비자 경험을 제공하며 외형적으로 성공했지만, 그 편리함은 고스란히 기업의 막대한 소실로 이어졌다. 2024년 기준 누적 결손금은 1,000억 원을 넘어섰고, 연간 150억 원 이상의 현금이 유출되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반면 JKL파트너스는 크린토피아의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 위에 'B2B확장' 이라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장착하고, '디지털 전환'과'리브랜딩'이라는 미래 가치를 더하여 기업을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인수 당시 약 151억 원이던 EBITDA는 매각 시점 360억 원으로 2.5배 성장했으며 멀티플 또한 11배 수준에서 17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결국 JKL파트너스의 크린토피아 인수 및 매각 스토리는 사모펀드 투자의 정석을 보여주는 하나의 완벽한 서사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 사례를 넘어 혁신적인 아이디어만으로 넘을 수 없는 '수익성'이라는 냉엄한 비즈니스 현실과, 낡은 산업 속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키워내본 자본의 힘을 동시에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그렇다면 JKL 파트너스가 크린토피아의 잠재력을 꿰뚫어 본 이 날카로운 시선을,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의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성공적인 서사는 단순히 한 기업의 이야기가 아니라, 2025년 현재,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기업에게 중요한 네 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보이지 않는 현금흐름을 찾고 있는가?
JKL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화려한 B2C 무대 뒤편, 묵묵히 돌아가는 B2B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 역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핵심 고객 뒤에, 그들을 움직이는 또 다른 거대한 시장은 없는가? 눈에 보이는 매출 너머에, 더 안정적이고 높은 마진을 가진 숨겨진 수익원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기업은 눈에 보이는 빙산 아래, 더 거대한 잠재력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
둘째, 대체 불가능한 해자(垓子)를 구축하고 있는가?
JKL은 기술만으로는 쉽게 복제할 수 없는 ‘허가 사업’이라는 견고한 성벽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이는 모든 기업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경쟁사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출혈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구조적인 경쟁 우위를 쌓아가고 있는가? 그것이 정부의 인허가든, 오랜 시간 축적된 브랜드 신뢰든, 혹은 대체 불가능한 인재 파이프라인이든, 기술의 파도를 넘어 우리를 지켜줄 깊고 넓은 해자를 파야만 한다.
셋째,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영리하게 결합하고 있는가?
크린토피아는 ‘런드리고’처럼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수익성이 높은 아날로그(B2B) 영역을 극대화하면서 디지털(앱)을 미래를 위한 방어막이자 고객 경험을 잇는 다리로 활용했다. 이는 온라인만이 정답이라 외치던 시대가 지나갔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서비스는 온라인의 편리함과 오프라인의 신뢰를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가? 디지털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넷째, 핵심 가치를 끊임없이 재정의하고 있는가?
리브랜딩은 단순히 매장 색깔을 바꾸는 행위가 아니었다. ‘세탁 편의점’이라는 낡은 개념을 ‘토탈 케어 서비스’라는 새로운 가치로 재정의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가? 그 가치는 지금의 시장 언어와 호흡하고 있는가? 스스로의 핵심 가치를 끊임없이 되묻고 시대에 맞게 재정의하며 투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견고했던 성벽이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용히 허물어질 것이다.
결국 가장 위대한 혁신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것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그 깊은 시선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