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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치 1조 되면 2억”스톡옵션, 믿어도 될까?

도전은 뜨겁게, 계산은 냉정하게 1편

by 생존일기

어그로가 다분한 제목에 죄송하다.

다만 “기업가치 1조 되면 2억”스톡옵션, 믿어도 될까?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A.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이 물음에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인재가 스타트업으로 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연 스톡옵션일 것이다.


성과에 자신이 있고 ‘일머리’가 좋다면 스타트업은 훌륭한 선택지다. 미친 듯이 일하고 큰 보상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스톡옵션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티켓이 아니다. 회사의 철학과 성장에 깊이 공감하고, 또렷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기회다.


얼마 전, 한 후배가 내게 물었다.


"선배님, 한 스타트업에서 면접을 보고 이런 제안을 받았습니다. '우리 회사의 현재 기업가치는 500억입니다. 당신에게 제안하는 스톡옵션의 현재 가치는 1,000만 원이지만, 기업가치가 1조 원이 되면 2억 원의 가치가 될 겁니다.' "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뭔가 좋은 제안인 것 같긴 한데... 도대체 이 500억이라는 기업가치는 어떻게 계산된 거고, 1조 원이 되려면 회사가 얼마나, 어떻게 커야 하는 거죠?"


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중요한 질문인가. 회사가 내게 책정한 값어치, 그리고 내가 입사할 회사의 현재 값어치도 모른 채 미래의 약속만 믿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쏟아야 할지 가늠조차 못 한 채, 내 인생의 소중한 기회비용을 전부 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기업의 밸류에이션(Valuation)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야기와 비상장 주식의 가치를 직접 어림해볼 수 있는 방법까지 이야기해보려 한다.(스타트업 벨류에이션 나중에 따로 다루겠다.)



PER, 기업 가치 평가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

PER(Price to Earning Ratio), 우리말로는 주가수익비율이다. 기업 가치평가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기본 지표다. PER은 시장이 특정 기업의 수익성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와 같다. 하지만 이 숫자의 진짜 의미를 알려면, 표면적인 수치 너머에 숨겨진 시장의 심리와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주가수익비율은 말 그대로 기업의 현재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값이다. 투자자에게 이렇게 묻는 것과 같다. "이 기업이 벌어들이는 순이익 1원에 대해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즉, 기업의 순이익 대비 주가가 몇 배로 평가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익성 지표다.

PER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주가 기준 계산법

PER = 주가(Price) / 주당순이익(EPS)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주식 1주의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여기서 주당순이익(EPS, Earning Per Share)은 기업의 전체 당기순이익을 총 발행 주식 수로 나눈 값이다. 주식 1주가 얼마의 순이익을 만들어냈는지를 의미한다.


시가총액 기준 계산법

PER = 시가총액(Market Capitalization) / 당기순이익(Net Income)

기업 전체의 가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며, 좀 더 거시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PER은 직관적으로 '투자 원금 회수 기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PER이 10배라면, 그 기업의 순이익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의미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멀티플(Multiple)'이 이익을 기준으로 평가될 때, 사실상 PER과 같은 개념으로 쓰인다.



PER을 둘러싼 흔한 오해 바로잡기

여기서 많은 사람이 하는 흔한 실수가 있다. PER을 계산할 때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PER의 'Earning'은 세금까지 모두 제외한 당기순이익(Net Income)을 의미한다.

25년 5월 PER이 600배가 넘어 화제가 된 팔란티어를 예로 들어보자. 이는 팔란티어의 영업이익이 아닌, 순이익을 기준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600년이 걸린다는 의미다.


만약 당신이 스타트업에 재직 중이고 "VC가 우리 회사 멀티플을 5배로 측정했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이는 우리 회사의 순이익 대비 기업가치를 5배로 평가했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 회사 순이익이 10억 원이라면, 기업가치는 50억 원으로 평가받은 셈이다.

물론 스타트업의 '멀티플'은 미래 성장성을 보고 매출이나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를 기준으로 삼기도 하지만, 이익을 기준으로 할 때는 PER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정확하다


비상장 우리 회사, PER 직접 계산해보기 (feat. 당근마켓)

상장기업의 PER은 MTS(주식 트레이딩 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비상장기업에 다니는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확한 계산을 위해서는 여러 지표를 함께 봐야 하지만, 여기서는 오늘 알게된 PER의 계산방식 자체에만 집중해서 계산하는 법을 알아보자.


그렇다면 단순히PER만 계산한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지표를 알야 하는가.

주가기준 계산법으로 계산한다면 주가와 주당 순이익을 알아야한다.

시가총액 기준 계산법으로 계산한다면 시가총액과 당기순이익을 알아야한다.


계산을 위해서는 주가주당순이익(EPS), 혹은 시가총액당기순이익을 알아야 한다. 이 정보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전자공시시스템(DART)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당근마켓을 예로 들어보자.


당근마켓의 사업보고서 34페이지 III. 재무에 관한 사항에 따르면 제10기인 2024년 당기순손익은 8,449,550,206으로 표기되어있다.

화면 캡처 2025-10-09 043458.jpg


또한 136페이지 주요배당지표에 따르면 주당순이익(EPS)는 1,380원으로 표기되어있다.

화면 캡처 2025-10-09 043527.jpg

어라 그런데 문제가 있다.주가기준 계산법을 하려면 주가를 알아야하고 시가총액 기준으로 계산하려면 시가총액을 알아야한다. 그런데 당근마켓은 비상장회사라서 보고서 작성 기준 종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주가 정보가 없으므로 시가 총액이 산정되어있지 않다.


사실 당근마켓은 투자라운딩 기사를 통해 당근마켓의 기업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재직중인 회사가 이렇게 명확히 명시된 기업이 아니라면 부정확하지만 쥐어짜기 추산을 해볼수는 있다. 한번 해보겠다.


가장 근사치로 계산하기 위해서는 최근의 구주 거래가격이 명시되어있는 경우다. 해당 보고서 159페이지를 보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주식소유 현황 표를 통해 주식 수가 변경됨을 알 수 있지만 얼마에 가격으로 거래되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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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17페이지에 F종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하며 투자를 유치했던 케이스로 계산을 해본다.

이때, 1주당 발행가액은 325,445원 이었다.

화면 캡처 2025-10-09 043806.jpg

이 가격을 현재의 시장 주가라고 가정하고 2024년 주당순이익 1,380을 적용하면


추정per = 325,445원/1380원으로 235배가 나온다.


3년전의 상환전환우선주를 사용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지만, 만약 언론자료가 없거나 최근 거래 공시자료가 없다면 이처럼 추산가능한 주가를 통해 계산을 해볼 수는 있겠다. 시장상황에 따라서 배율을 적용해서 더 정확한 추산을 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 per은 어떨까? 21년 당시에는 적자기업이었으나 현재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해 영업이익은 무려 376억원이다. 그렇다면 PER은 폭발적으로 늘지 않았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당근마켓은 21년 시리즈D에서 3조원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25년 3월 구주거래에서는 2조7천억원의 인정을 받았다.


역산해보면


추정주가 : 2조 7천억 / 9,486,544주(총 발행 주식 수) = 284,625원

추정PER : 284,625(추정 현재 주가) / 1,380원 = 약 206배



추정PER보다 더 떨어졌다. 심지어 기업은 더 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보통 흑자 전환 초기의PER은 이익의 규모인 분모는 작지만, 이익 성장 가능성이 분자에 크게 반영되며 PER이 오른다.


그런데 당근마켓은 아니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는 투자의 기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21년 IT기업에 붐이 불며 말도안되는 PER가 붙었다. 하지만 현재는 시장이 냉각되며 기업가치 평가 기준이 보수적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때 당근가치는 10%의 기업가치가 하락했으므로 나름 선방을 하고 있는 샘.


이처럼 PER이 모든것을 대변하지 않는다. 보조지표로서 활용해야하며 여러 지표와 함께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다음 장에는 조금더 심화된 PER에 대해 다루어보겠다.)


후배의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뭔가 좋은 제안인 것 같긴 한데... 도대체 이 500억이라는 기업가치는 어떻게 계산된 거고, 1조 원이 되려면 회사가 얼마나, 어떻게 커야 하는 거죠?"


만약 이 기업이 매출 400억에 당기순이익이 25억쯤 난다고 생각해보면 이 회사의 per는 20배다(500억/25억)


이 기업이 R&D기반의 기업이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어서 락업해제가 되는 5년동안 크게 매출과 당기순이익이 향상되지 않았음에도 말도안되는 기술의 혁신으로 per가 20배에서 400배가 된다면, 즉 당근마켓의 2배이상의 벨류이면서 팔란티어에 준하는..! 그런 기업이 된다면 충분히 원하는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땀흘려 일해야하는 제조업보다는 나은 저부가가치의 사업이라서 per이 20배에서 크게 오르지 않는다면 당기순이익이 약 6%가량이므로 매출 8300억에 당기순이익 500억의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두 예시 모두 극단적인걸 안다. 어짜피 글을 읽는 사람은 본인의 도메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을 것이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시장의 벨류에이션을 측정해서 적용해보면 될 일이다. 또한 해당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단순 벨리에이션 뿐만 아니라 기업의 가치를 PR할 수 있는 대표의 역량도 매우 중요하다.스타트업 시장에서는 대표가 가진 기업의 비전에 따라 per는 바뀔 수 있기 때문.


아무튼, 스톡옵션을 내가 원하는 기간에 내가 원하는 가격만큼 받는 일은 정말 어려운일이다. 대부분은 휴지 조각이 된다. 그럼에도 주식과 다르게 '나의 노력'으로 미래의 기업 가치를 직접 끌어올릴 수 있는 일은 매력적이다.


뜨거운 도전은 언제나 환영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도전에 올라타기 전, 차가운 머리로 냉정하게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에게는 400억 매출의 기업을 5년 내에 8300억 까지 성장시킬 능력과 각오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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