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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강박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크레프톤웨이2 : 완벽한 답안지 대신, 치열했던 오답노트

by 생존일기

회사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또 번복한다. 누군가는 그 결정에 대해 지탄을 보내고, 누군가는 동의하고 따른다. 저마다 자기만의 정답이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과 다르면 비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결정권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답은 없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정말 정답인지는 오직 시간이 평가할 뿐이다.


지난 12년간의 직장 생활이 꼭 그랬다. 그래서 『크래프톤웨이』의 두 번째 이야기, 배틀그라운드, 새로운 전장으로에 담긴 그들의 오답노트는 유독 큰 위로가 되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열띤 토론과 마찰, 그리고 결정과 결과. 마치 잘 만든 회사 드라마를 보며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공감하듯, 책을 읽는 내내 지난 시간을 음미하다 보니 완독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내가 겪었던 고통과 인내, 성취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었구나’, ‘내가 했던 고민들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 ‘그때 조금 더 치열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까’ 하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 책은 단순한 성공 신화가 아니었다. 성공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아니라, 더 복잡한 질문의 시작임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기록이었다.



성공, 그 이후의 혼돈을 항해하는 법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성공 비법을 전수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거대한 성공 이후의 혼돈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통해, 완벽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세계의 본질을 꿰뚫는다. 다른 독자분의 서평을 빌리자면 "그들의 길은 너저분하고, 지루하며, 불확실했다.”


첫 번째 책이 실패를 통한 끈기의 미덕을 이야기했다면, 두 번째 책은 성공 이후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크래프톤의 리더십, 성공 연대기, 그리고 실패의 철학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통찰과 위안을 준다.


『크래프톤웨이』의 중심에는 두 인물의 철학이 있다. 그들의 리더십은 모방해야 할 ‘정답’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끌어안는 하나의 사례 연구다.



김창한: ‘17년의 실패’가 빚어낸 회복탄력성

김창한 대표는 스스로를 “17년째 실패만 거듭한 PD 혹은 자연인”이라고 칭한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그의 전략적 사고를 형성한 원천이다. 계속된 실패의 경험은 그에게 두 가지 핵심 철학을 선물했다.

“예상할 수 없는 결과는 계획할 수 없다.”

그는 배틀그라운드의 예상 판매량 같은 예측 불가능한 수치를 계획하는 대신, 실재하는 시장(FPS 팬층)에 집중하고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미지의 성공을 좇기보다, 불확실한 환경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현실적인 전략이었다.

“스스로 경계를 긋고 가두지 말라.”

그는 진정한 돌파구는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할 때 나온다고 믿었다. 서구권을 겨냥하고, 해외 인재와 협업했으며, 스팀이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했다. 익숙하고 안전한 ‘정답’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다. 그의 17년 실패 경험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내성과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직관적 ‘감’이라는 전략적 경쟁력이 되었다.



장병규: 신뢰와 성찰의 철학자

장병규 의장의 의사결정 방식은 깊은 성찰 끝에 확신을 내리고, 그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는 투자를 계약서보다 “믿음과 신뢰에 관한 행위”로, 경영을 “이기심과의 끊임없는, 너무나도 지루한 싸움”으로 정의한다.

장 의장의 신뢰와 성찰의 리더십은 김 대표가 추구하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도전과 실패의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안전망 역할을 했다. 이 두 리더는 함께, 불확실성이 제거해야 할 위협이 아니라 항해해야 할 영토로 인식되는 시스템을 창조했다. 책에서 독자가 느끼는 위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온다. 정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이, 함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신뢰로 대체되는 순간이다.


성공의 역설: 정답을 찾았지만 길을 잃다

배틀그라운드의 엄청난 성공은 ‘정답’이 아니라, 수천 개의 새롭고 더 어려운 질문의 시작이었다.


2017년: 생존을 위한 투쟁 성공은 축제가 아니라 위기관리의 연속이었다. “개발 직원 100명이 밑바닥에서 팔이 부서져라 노를 젓고 있었다”는 비유는 당시의 소모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박 게임이라는 정답을 손에 쥐었음에도, “성취를 잃을까 봐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는 역설이 시작된 것이다.


2018년: 공식을 향한 탐색 하나의 성공 공식을 찾았다는 생각에, 또 다른 성공을 복제해야 한다는 압박이 가해졌다. 책의 서술은 명확한 전략보다는 ‘닥치는 대로 시도’하며 길을 잃었던 혼란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정직함이야말로 이 책이 주는 위로의 핵심이다.


2019년 이후: 시스템과 문화의 구축 정신없는 확장의 시기를 거친 후, 그들은 본질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임기응변에서 벗어나 ‘기록과 공유’를 통한 투명한 문화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는, 불확실성을 반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크래프톤의 가장 중요한 제품은 게임이 아니라, “효율적인 도전과 가치 있는 실패”를 위한 엔진, 즉 조직 그 자체였다.


구부러진 길이 주는 위안


『크래프톤웨이』가 주는 위로는 성공 이후의 삶이 얼마나 두렵고, 지저분하며, 불확실한 현실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정직함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성공을 위한 처방전이 아니다. 오히려 지도 없는 세상을 위한 항해술에 가깝다. 세상에 단 하나의 ‘정답’은 없으며, 가장 가치 있는 능력은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탐색을 계속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겪는 수많은 고민과 실패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고, 그저 구부러진 길을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크래프톤의 이야기는 묵묵히 등을 다독여 준다. 정답을 찾아 헤매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따뜻한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Special thanks to : https://brunch.co.kr/@core-c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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