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
익숙한 자전거와 분노의 따릉이를 거쳐 2024년 5월 3일 서리태를 만나고 2024년 7월 19일 배짱이를 만난 2024년. 이렇게 깊게 자전거의 매력에 빠지게 될 줄 5월에도 알지 못했지.
01.
연차를 쓰고 간 BB5 용산점에서, (금액적인 이유로)생각했던 23년식 모델의 컬러가 소진되어 결국 (금액적인 이유로)눈물을 머금고 24년식 블랙을 데려왔다. 시승도 해보고 서성이기도 하면서, 어차피 오래 탈 생각으로 (통장은 빌지언정 마음은 충만할)최선의 선택을 했는데, 올해 가장 잘 한 선택이었을 정도로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오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꽤 따가웠던 날이었다. 이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하며 목표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잡고 갔으나, 지치고 힘들어서 동묘까지 갔다가 토스트를 사 먹고 사무실에 왔다. 연차였는데 자전거 자랑 하고 싶어서 출근 한 사람이 되어버린 오후, 얼굴이 쌔빨갛게 달아올라 자전거를 자랑하는 나를 보며 다들 자전거 생활의 시작을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자전거에겐 ‘서리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까만 콩을 닮은 나의 소중한 자전거.
2024년 9월의 끝무렵인 오늘까지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매일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도 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장마 기간엔 비를 맞아가면서 달리기도 했고.
서리태를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경량의자 하나를 데려왔고 한강 나무 그늘 밑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자전거 하나로부터 시작된 세계가 도대체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경량의자라니. 아무튼, 그 그늘 밑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안미옥 시인의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기억에 남은 이유의 문장을 적으며, 요즘 내가 조금 더 사랑하는 쪽인 자전거의 세계로 이번 주도 잘 달렸다.
좋아하는 것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내 시간을 선물하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함께하는 시간. 멀리서도 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엔 함께 있는 것과 같다.
이름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을 쓰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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