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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Oct 27. 2024

참새 방앗간 - 04

곁을 내어주는 것

 그날은 우연이 겹을 이룬 날이었다. 출근 전, 주말 아침 심신안정을 위해 배짱이를 끌고 집을 뛰쳐나간 날. 항상 쉬는 용비교에 쉴 자리가 없었다. 목이 말랐는데 나는 자전거 안장 위에서 물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이기에 조금만 더 가 성수대교 밑에서 쉬어야지 하며 페달을 밟았다. 성수대교를 지나는데 피트 인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 그렇게 그대로 그곳을 스쳐 지나가버렸다. 에이-씨! 하고 다시 페달을 밟아 성수대교와 뚝섬 중간에 제일 높은 언덕을 넘어 그 위에서 쉬어야지 하며 다시 페달을 밟았다. 드디어 제대로 된 피트 인 을 하고 물을 마셨다. 햇살이 따듯했다. 그리고 뷰가 좋았다. 자전거 일지를 쓰다가 문득, ‘여기 근처에 그 카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싶어 핸드폰에 검색을 해보니 나들목만 넘어가면 바로 ‘그’ 카페가 있었다. 나들목 이름은 청구 아파트 나들목. 배짱이를 질질 끌고 간 곳에 그 카페가 있었다.


 처음 방문 한 카페 앞에서 자전거를 어디에 둘 지 몰라 어영부영하고 있으니 자전거를 유리창(?)에 세워 두면 된다며 자전거를 세워주셨다. 들어간 카페에는 편안한 음악과 귀여운 강아지가 있었다. 그것도 두 마리나! 뜨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강아지도 보고 카페의 굿즈도 구경하며 이곳을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앉아 있는 맞은편 창문으로 빛이 예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날 그 장소에서 적어 둔 일지엔 이런 문장이 남아 있다.


 음악과 커피와 강아지는 사랑이다.

 사소한 우연의 즐거움이 있다.




 그 다음번에도 그 그 다음번에도,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엇비슷한 시간에 도착해 일지를 쓰고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과 강아지들을 보고 이북을 조금 읽다가 다시 나는 갈 길을 간다. 엇비슷한 시간에 가서 그런지 엇비슷한 시간에 오는 또 다른 사람들을 본다. 한 번만 본 사람도 있고, 여러 번 본 사람도 있다. 그중에는 강아지를 키우며 산책하는 사람도 있고, 신비로워 보이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대화하는 사장님도 본다.


 오랜 시간 그곳에 앉아 있지는 않지만,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본 풍경들은 항상 비슷한 듯 사실은 다채롭다. 사장님은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고 커피를 내린다. 혼자 온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기다리고, 함께 온 사람들은 커피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눈다. 먼저 온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모든 주문을 끝낸 사장님은 단골분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단골이거나, 단골과 아는 새로운 인물이거나, 이 공간이 궁금해서 온 사람이거나. 어제는 손님으로 본 사람이 오늘은 내 커피를 주문받고, 손님 옆에 앉아 대화를 했다. 신기했다. 처음 카페를 갔을 때도 그 다음번에 갔을 때도 그 그다음다음번에 갔을 때도 아무튼 갈 때마다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아저씨 대신 새로운 인물이 그 자리에 앉아있고, 신비로운 아저씨는 카운터 앞 원래 앉던 반대편 구석자리에 있었다. 재밌었다. 수영장에서 같은 자리에서만 샤워하는 이모들이 생각났다. 어느 날에는 신기한 사람도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들목을 나가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봤다. 그런가 보다 하고 카페에 가 커피를 시키고 앉아있는데, 아까 그 사람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람과 사장님은 자전거 얘기를 나눴고, 나는 그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날 적어둔 일지엔 이런 문장이 남아 있다.


 자전거로 연결된 다정하고 느슨한 세계가 눈앞에 있다.


 이 카페를 방문한 지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갈 때마다 사소하게 즐거운 일들을 조금씩 발견한다. 오늘 카페에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도 그렇고.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멍하니 있다가 그 카페 생각이 났다. 자전거가 내게 준 것. 이 다정하고 느슨한 세계. 그리고 곁을 내어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오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곳.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


 앞으로도 나는 계속 그곳에 갈 거다. 엇비슷한 시간에 가서 비슷한 메뉴를 시키고 가끔은 특별한 메뉴를 시키며, 일지를 쓰고 이북을 조금 읽다가 내 갈 길을 가는.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다정하고 느슨한 세계가 내 곁에 있어주는 거 같아서.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


 HBC COFFEE

 Hitch Bicycl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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