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 Oct 19. 2024

아빠와 자전거 - 03

아빠를 만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자전거 생활을 쓰면서 서막으로 엄마와 나와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적었는데, 문득 아빠 이야기가 쓰고 싶어 졌다.

 

 아빠는 MTB를 탄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언제부턴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아빠의 자전거는 저렴한(진짜 저렴한지는 모르겠고 아빠 표현에 따르면 저렴한 자전거랬다.. 그땐 자전거 가격을 잘 모를 때 였..) 트렉 자전거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는 없고 벌써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고 했다. 따로 살게 되면서 전화해서 뭐 하냐고 주말에 물어보면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고, 평일에 물어보면 퇴근하고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고 했다.


 아빠는 자전거 맨들의 기변병을 이기지 못하시고 상위 버전의 트렉으로 기변을 한번 하시더니, 엄마의 자전거도 데려오셨다. 이제는 때때로 같이 타신다. 아주 보기 좋은 부부의 모습..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빠는 먼저 가고 엄마는 따라가기 바쁘댔다. 어쨌든 같이 집에서 나가서 같이 돌아오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아빠에겐 작은 노브랜드의 사이클링 컴퓨터가 있었다. 탄 거리와 주행시간만 나오는. 내가 로드를 타기 시작하면서 사이클링 컴퓨터를 사기 시작하고 아빠도 내가 쓰는 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가민 엣지530을 가져다 드렸다.


 처음엔 관심 없는 척을 하시다가, 심박도 나오고 케이던스와 속도가 나오는 게 재밌으셨는지 가져간 날 테스트 겸 같이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그날 아빠는 나를 두고 먼저 갔다. 아 엄마가 말한 게 이거였구나. 역시 사람은 직접 경험해 봐야 알게 된다.


 그 이후로 아빠는 혼자서 때로는 엄마와 때때로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몇 번 더 탔다. 스트라바 앱에 연동된 아빠의 기록을 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아빠에게 전화하기도 했다. 근데 뭔가 기록이 좀 이상한 것 같더란 말이지?


 그러던 중 오늘 아빠 몰래 아빠 집에 갔다.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갔는데 두 눈이 똥그래진 아빠. 사이클링 컴퓨터는 잘 쓰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뭐가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줄 알았다. 다시 알려드려야겠다 싶어 얘기를 하는데 역시나. 기계가 익숙지 않은 아빠는 이것저것 누르다가 이상하게(?) 설정이 변경되어있었던 거다. 제대로 시작과 끝을 하지 않아서 엉망진창의 데이터가 되었고.

 

 같이 아빠 손가락보다 작은 버튼을 눌러가며


 1 켠다

 2 주행설정 진입

 3 같은 버튼 한 번 더

 4 엉덩이 때려 주행 시작!

 1 엉덩이 때려 주행 끝 - 기다리기

 2 저장 버튼 누르기

 3 같은 버튼 한번 더

 4 끈다


 몇 번 더 시도해 보며 손에 순서를 익혀가는 아빠. 아빠가 몇 번 더 해보더니 외친 한마디는


 “까꿀로 하면 되네!”  


 그렇게 생각을 해본 적 없던 나는 아빠의 지혜에 감탄했다. 맞는 말이었다. 어렴풋.. 아빠가 이제 다시 순서를 까먹을 일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일은 아빠의 스트라바를 보며 키득거리고 아빠에게 전화할 일만 남았다.


 아빠는 자전거 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