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리나 Oct 30. 2024

이태원 참사의 본질을 찾아가는
365일의 기록

정부가 없다 - 정혜승

참사의 현장을 담은 첫 기록을 받다     

2023년 1월 초, 대표님이 회사 메신저로 구글독스 링크를 하나 전달해주셨다. 함께 도착한 메시지는 ‘정혜승 님이 이태원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썼답니다. 검토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보기 전에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정혜승 님이 누구던가? 언론인 출신으로 카카오를 거쳐 청와대 디티털소통센터장을 거쳐 메디치 포럼에서 2차례나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홍보전문가다. 또한 엄청난 다독가로 유명한 독서클럽장이자 여러 플랫폼에 기고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같이 작업하고픈 저자 리스트에 올라 있는 분이 원고를 먼저 보내왔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다룰 만한 주제인데다, 정혜승 님이 쓴다면 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일하는 기획자에게 링크를 전달해 함께 검토하자고 요청했고 읽고 나서 의견을 나누기로 했다.       


며칠 뒤 회의 시간에 마주앉은 나는 그녀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저자에 대한 팬심으로 읽은 내 의견을 먼저 제시해서 원고에 대한 선입견이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입부터 무척 강렬했어요. 10월 29일 밤, 아이가 들어오지 않아서 이태원에 찾으러 나간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긴장감이 확 올라오더군요.”

“나도 그랬어요. 그 현장에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왜 이 글을 순식간에 써내려갔는지 저자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그런데 현재 원고는 언론 보도를 인용한 것들이 많아서 평면적이고 밋밋한 느낌이어요. 팩트보다는 저자가 경험하고 느낀  내용들을 대폭 보강하면 좋겠는데….”

“저도 보강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깊이를 주려면 이태원 참사뿐만 아닌 다른 재난연구 사례도 함께 들어가면 좋겠어요.”

“좋은 생각이에요. 우리에게는 세월호가 있잖아요.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두 사건을 비교해서 바라보는 것도 괜찮겠죠.”     


한 시간 가까운 회의 끝에 초고의 수정 방향에 대한 피드백을 정리했고, 상세 내용을 적어서 정혜승 님에게 보냈다. 수정 방향의 골자는 크게 4가지였다.

1. 재난 관련 국내외 사례와 연구 내용 보강  
2.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를 바라보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기억하고 해야 할 것들을 짚어보기
3. ‘공감’ 그리고 이를 통한 ‘연대’의 기술. 시민사회와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짚어보고 실천할 수 있는 올바른 연대의 방식 살펴보기
4. 공감의 부재. 참사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부의 문제. ‘공감력 부족’을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기

이 외에도 단순히 언론보도를 인용하기보다는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이야기를 듣고 주관적 맥락에서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담아 긴 메일을 보냈다.     

 

전폭적인 개고 요청을 선선히 수락한 저자     

솔직히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서 저자가 수정 제안을 다 받아들여주실까 염려가 되었으나 정혜승 님은 너무나도 선선히 우리의 제안을 다 받아들여 주었다. 안 그래도 귀한 인터뷰들을 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전체적으로 다 손볼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인간만사 새옹지마. 늘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긴다. 원래 속도를 높여 1월말에 마감을 할 예정이었으나 정혜승 님의 신상에 변수가 생겼다. 뜻밖의 수술을 하게 되었고, 오래전에 잡아둔 여행 일정을 마친 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저자의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원고 독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달 여의 시간이 흘렀고, 여행을 다녀온 뒤 수술과 치료를 마친 저자는 2월 말 사무실을 찾아왔다. 우리는 메일로 주고받았던 피드백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우리 아이들이 세월호를 겪었을 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또 참사가 일어났어요. 너무 가엾고 미안한 일이지요. 제 기록은 그 미안함에서 시작된 거예요.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스케줄을 추가로 잡았어요. 사실 마음이 힘들어서 피하고 싶었는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관계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녹여내려 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10월 29일에 이태원에 가신 것은 아이를 찾으러 가신 거잖아요. 엄마의 관점에서 써나가시는 글이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오리라 생각해요. 잘못된 정치와 정부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명확히 짚어주시면 좋겠어요. 정치, 정부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요.”

“이 책은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와 사과이자, 피해자들을 비롯해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사과입니다. 분노와 절망을 넘어 모두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해답, 희망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고요.”     

정혜승 님과 나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처지였기에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접하며 슬퍼하고 울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공감했다. 유가족들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혜승샘은 인터뷰 등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힘껏 해보겠노라고 약속하고 결의에 찬 얼굴로 사무실을 떠났다.           

32명의 인터뷰지난 1년의 이야기를 담아낸 360쪽의 기록     

그 후로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저자의 집필을 메일로 독려하며 수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저자가 약속한 마감은 8월초였지만 수정원고는 오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리다가 독촉을 할까 하던 참에 마침내 메일이 도착했다. 무려 32명의 인터뷰를 담아낸 방대한 기록이었다. 유가족 인터뷰를 아직 못했는데 추가해서 마지막 장에 넣겠다고 했다.     

초반에 피드백 했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수정원고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장별로 피드백을 시작했다. 완성도가 높은 원고였지만 디테일한 문의, 수정 사항들이 제법 있었다. 전직 기자답게 심층 르포기사로서 잘 풀어갔으나 팩트에 충실한 저자의 성격을 반영하듯 문장이 아주 정직했다.      

프롤로그의 상황은 좀 더 극적으로 긴장감 있게 그리고 싶은데 하는 생각에 약간의 터치를 제안했다. 너무 늘어지거나 중복되는 것들도 삭제표시 하면서 좀 더 빠른 호흡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코멘트했다. 팩트 체크할 것들, 표현 바꿀 것들, 한 꼭지 안에서 흐름을 위해 다소 순서를 바꿀 것들을 워드 파일에 일일이 메모를 달아 저자에게 의견을 구하고 수정을 부탁했다.  그렇게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약 한 달여에 걸쳐 장별로 피드백하고 수정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유가족 인터뷰를 넣은 마지막 장의 원고가 도착했다.    

  

피드백과 수정이라는 지난한 작업을 마친 뒤 완성원고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편집을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1교가 나왔을 때 디자이너가 톡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실장님, 페이지가 너무 많이 나오는데요? 380쪽 정도 될 것 같아요.”

아뿔사! 장별로 피드백을 하느라 전체 원고 분량을 미처 가늠하지 못한 것이다. 고민 끝에 저자에게 이실직고하고 SOS를 쳤다. 저자 교정을 보면서 반복되거나 늘어지는 부분이 있으면 과감히 날려달라고 말이다. 

저자는 ‘분량 줄이는 것쯤이야’라며 선선히 그러겠노라 했고, 그렇게 1교 파일에서 20p 가량을 날리는 대공사를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360p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 되었지만….     


마음을 알아준 오랜 지기의 추천사에 울컥하고     

그때가 벌써 10월초, 10월 29일에 서점에 책이 다 들어가 있으려면 편집, 디자인, 제작을 서둘러야 했다. 속도를 내서 달리면서 저자에게 추천사를 받아달라고 했다. 여성이었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저자는 용혜인 의원과 김혜리 기자의 추천사 약속을 받아주었다.      

정확히 마감 날짜와 시간을 지켜 두 분의 추천사가 들어왔다. 저자와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추천사의 내용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김혜리 기자가 쓴 추천사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어찌 보면 정혜승 작가 안의 정혜승 기자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긴 기획 기사로 보이기도 한다. 책의 문체는 저널리즘의 건조한 그것이지만 나는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내내 2022년 10월 29일 밤의 위협적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느낀다.”     


저자는 내가 전달해준 추천사를 읽고 이 부분에서 왠지 모를 울컥함이 밀려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책은 저자가 살고 있는 용산구 일대에 위협적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던 바로 그날 밤, 저자가 경험했던 지옥 같은 공포의 순간에서 시작된다. 집필하는 내내 저자가 느꼈던 그날의 공포와 분노를 저자의 오랜 지기인 김혜리 기자가 알아봐주었다는 고마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힘들게 공들여 만든 책은 10월 27일에 출간되어 서점에 배본되었고 온라인 서점 구매링크도 오픈되었다. 좋은 평을 얻고 있지만 판매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점이 아쉽다. 이유가 무엇일까? 공동체 일원 모두가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지는 않는다. 혹자는 참사를 정치화하지 말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혹자는 피로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태원 참사 1주기지만 관련 주제를 다룬 책이 많지 않다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책이 나온 그날, 저자는 책을 들고 청계천 광장의 유가족을 찾았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도록 기록해주어서 고맙다는 유가족들의 말에 저자는 몸둘바를 몰랐다고 한다.      


사람 죽지 않는 게 안전이잖아요. 기억해야 할 것 아닙니까? 사고 나면 정부는 빨리 잊혀지기를 바라고, 유가족들은 합동분향소에서 버티고, 단식하고, 행진하고, 거리로 나오는 일이 반복됩니다. 무슨 공식 같아요.    


책에서 읽은 어느 유가족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려퍼진다. 이제는 사고가 나고 잊혀지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올디스 벗 구디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