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나은 Jun 15. 2023

조금 더 빨리 실패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생애 첫 도전 다운 도전 일기

꿈에 그리던 대학에 원서를 넣고 나오는 길이었다.

유난히 긴 언덕을 가진 캠퍼스를 걸어 내려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나는 이 도전을 하는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도전도 실패도 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실패할 것 같은 도전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소한 성취는 있었지만 실패는 없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식상한 격언에는 조금의 감정적 동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순풍에 돛 단 듯 힘차게 나아가는 배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 위에 고요히 떠있는 배와 같은 인생을 살면 된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랬던 내가 넘볼 수도 없다 생각했던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나만의 임신 준비로 시작한 도전의 여정에서 가장 도전다운 도전이었다.


원서를 가지고 캠퍼스의 언덕을 오르는 길은 제법 짜릿했고, 원서를 제출하고 언덕을 내려올 때에는 꽤나 허탈했다.

이 종이 쪼가리가 뭐라고,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지난 10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오늘의 도전이 비록 실패로 끝난다 할지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도전’이라는 단어 앞에 제법 떳떳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쌓여 걷다 보니 캠퍼스 내에서 길을 잃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 나는 실패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길을 잃었다면 찾으면 되고 그러다 늦으면 조금 뛰면 또 어떤가. 중요한 건 방향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 더 빨리 실패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지나온 세월에 대한 짧은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이 또한 괜찮다. 허송세월 흘려보낸 나의 20 대도 결국은 하나의 실패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나의 오늘이고 포기하지 않는 한 모든 실패는 경험이다.

굳이 진부 하자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아니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나도 팔자 한번 고쳐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