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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Jun 20. 2023

나의 해방 일지

대한민국 사회, 학벌주의의 늪에서 살아남기


최종면접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최종 합격을 한 순간이 아니라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붙으면 어떡하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이 읽은 것이 옳다.

귀 대학원에서 나의 꿈을 펼쳐보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한 지 고작 1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학벌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고, 좋은 대학이라는 간판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이 가지는 의미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한 온라인 강사의 말을 기억한다.


나는 믿음직한 간판이 없는 죄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끊임없이 무거운 돌을 밀어 언덕을 올라야 했던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그래서 대학원만큼은 나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기에 충분한 그런 학교에 가고 싶었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학교에 지원했고, 서류에 합격해 면접을 보았다.

어쩌면 내가 그리도 꿈에 그리던 그 ‘학벌’이라는 고지가 눈앞에 이르른 때였다.


그런데 맥이 빠지게도 그 순간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이 맞나? 내가 나의 남은 청춘을 기꺼이 내던질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두 가지 보기가 있었다.


하나는 날파리를 쫓아내듯 이러한 생각을 지워버리는 방법이다.

지금 내 머릿속을 파고든 맥락에서 벗어난 생각은 아마도 탈락할 경우 낙심되는 마음을 피학기 위한 나의 방어기제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에 열린 포도를 보고 “신포도인가 보다”하고 돌아서는 여우들의 비유처럼 말이다. '무언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가질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척을 하는 것'이라고 나의 현 상태를 진단 내리고 빠르게 현실로 복귀하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생각의 뿌리와 의미를 찾아 모험을 감행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보기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학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두 번째 보기의 전제가 옳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들은 어쩌면 방향이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 만약 정말 내가 방향을 잘못 설정한 것이라면 나는 또다시 내 길을 찾아 정처 없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두 가지 보기 중 나는 후자를 택했다.

밤낮으로 골머리를 앓아보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지혜를 구해보기도 했다.


생각을 정리하면 할수록 한 가지 사실이 뚜렷해졌다.


“내가 정말로 학벌을 간절히 원했다는 것”


아프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 내가 정말 학벌이 가지고 싶었구나 “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순수한 열망을 마주하자 놀랍도록 평온한 마음이 찾아왔다.

‘이름 있는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과 억울한 마음, 막연한 동경, 질투하는 마음 등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길고 긴 이야기를 스스로와 나누었다.


그렇게 나는 입시지옥으로부터 벗어난 지 10년 만에 비로소 ’학벌‘이라는 내 삶의 족쇄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내 삶에는 보다 가치 있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는 그닥 잘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그려보기로 했다.

내 나이 서른, 어쩌면 백지로 돌아가기에 아주 딱 좋은 나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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