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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Jun 25. 2023

나의 친애하는 전 남자친구들에게

나를 성장시킨 만남, 그리고 헤어짐

“CC(캠퍼스 커플)은 절대 하지 마라. 어차피 말 안 듣겠지만.”


신입생 오티가 한창 무르익던 새벽, 한 선배가 여자 후배들을 모아 놓고 CC를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일장연설을 해주었다.

선배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아, 저 선배는 CC를 했다가 엄청 안 좋게 해어졌나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하지 말라는 것은 꼭 하고 마는 고약한 버릇이 있는 나는 기어코 같은 과, 그것도 동기와 첫 번째 연애를 시작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내가 첫 번째 남자친구를 선택한 이유는 ‘인기가 많아서’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당시 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는 굴뚝같은 마음과 달리,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할 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오 그래? 저 사람이 괜찮다는 말이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괜찮은 것도 같았다. 조금씩 가깝게 지내다 보니 그도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우연한 기회에 연락을 하게 된 그와 나는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 그 자체에 대한 설렘인지, 그 사람에 대한 설렘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이내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의 소용돌이 빠졌다.


그는 제법 따듯한 사람이었다.

추운 겨울 나와 함께 길을 헤매면 내가 고생일까 미리 데이트 장소에 도착해 길을 익혀둘 정도로 배려심이 깊었다. 부족한 용돈을 쪼개어 간 고깃집에서 본인은 배가 부르다며 내 앞에만 고기를 놓아주던 모습은 지금도 한 편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풋풋한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스물한 살, 우리는 연애에 대한 서로의 이상을 수없이 깨부수며 다투기 시작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상상 속 연애’와 ‘현실의 연애’ 속에서 서로 방황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연애를 시작하는 것에도, 이어가는 것에도, 마무리하는 것에도 미숙했던 나는 어학연수를 도피처로 삼았다. 제대로 헤어지지 못한 탓인지 첫 번째 연애에 따른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갔다. 일 년간의 휴학을 마치고 돌아온 캠퍼스에서 나는 꽤 오랜 시간 그와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철렁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없는 시간 동안 그와 나의 연애 스토리는 캠퍼스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져있었다. 물론 철저히 그의 관점으로 말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부정적 의미의 ’공주님‘ 같은 이미지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별 일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외롭고 서글픈 시간을 보냈다.


나의 연애 자아는 잔뜩 위축되었고, 나라는 사람의 매력에 대해 스스로가 확신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나는 약 3년 동안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이성과 마주했던 시간이었으나 모든 인연이 그저 스쳐갈 뿐, 진지한 만남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 되어서는 ‘나에게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딱 그 시점에 두 번째 남자친구를 만났다. 두 번째 남자친구는 소위 말해 ’스펙이 좋은‘ 사람이었다. 처음 그의 번호를 전달받았던 날, 명문대 앞에서 학사모를 던지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뭐야. 이렇게 괜찮은 사람을, 내가?”라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학교를 나와 외국계 기업에 다녔던 그는 심지어 굉장히 착한 사람이었고, 결정적으로 나를 매우 좋아해 주었다. 연애를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첫 번째 연애에서 뼈저리게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두 번째 연애에서는 조금 더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었다. 상대에게 받는 사랑에 연연하기보다는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나중에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서로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 있었다.


“이대로 가면 결혼이겠구나.”


그러던 어느 날 ‘결혼’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종을 울렸다. ‘연애’와 ‘결혼’은 엄연히 달랐다. 연애는 ‘오늘’을 함께 하는 것이라면 결혼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닌가.  그 사람과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개인으로 놓고 보았을 때에도 나보다 그의 조건이 좋았고, 집안을 놓고 보았을 때에도 그랬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단어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그와 함께 할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오랜 고심 끝에 나는 ‘내가 그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회적 조건만 놓고 보았을 때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제법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하며 내가 지켜본 그의 모습은 배우자로서 평생을 존경하며 살아가기에는 부족하다 느껴졌다. 이때부터는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다.”


흔히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여자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말이다.

동시에 이런 말도 있다.


”이상형이 존경할 수 있는 남자인 여자는 눈이 너무 높은 것이다. “


극단적으로는 ‘존경할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그냥 나를 좋아해 주는 적당한 사람을 만나 자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단지 ‘존경스럽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별을 고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나를 아주 혼란스럽게 했다.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들어 싸우지도 않게 된 시점에 갑작스럽게 ‘결혼은 아닌 것 같다’며 이별이라니. 윤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와 같은 생각을 시작한 지 세 달 정도가 지나니 ‘윤리’나 ‘논리’ 따위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로 만들어버릴 엄청난 이별 사유가 발생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두뇌를 풀가동 시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차게 식어 버린 ‘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 연애에 대한 나의 마음이 이제 끝났다는 사실을 마주한 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차게 식어 버린 나의 감정이 그에게는 뜨거운 상처가 될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내 평생을 살아가며 아직도 그렇게 미안한 감정을 크게 느꼈던 적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미안함’으로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기에 결국 나는 펑펑 비가 오던 날 그에게 두 번째 이별을 고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올 정도로 그는 나에게 고맙고 미안한 인연이다. 그는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어 주었고, 그 사랑은 나를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연애에 대해 잔뜩 위축되어 있던 나는 두 번째 연애로 사랑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무엇보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니 지금쯤, 나보다 좋은 짝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으리라 예상한다.



나는 지금의 남편을 포함해서 딱 세 번의 연애를 했다.

그리 많은 연애를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연애만큼 나를 성장시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시기적절한 순간 내 인생에 나타나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돌아간 나의 친애하는 전 남자친구들에게 더 없는 감사를 보내고 싶다.


당신들 덕분에 내가 참 많이 웃고 울었다고, 그 시간으로 나는 더 나은 어른이 되었고, 그 덕분에 오늘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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