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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Aug 10. 2022

엄마 되기 프로젝트

드라마 한 편과 시작된 나만의 진짜 임신 준비


모든 것은 한 편의 드라마로부터 시작되었다.

여느 주말과 같이 소파에 앉아 배달음식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고 있던 날이었다.


정확하게는 넷플릭스 시리즈인 <애나 만들기>를 보고 있었다. 드라마의 중반부터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는데, 놀랍게도 이 드라마의 장르는 범죄물로 슬픈 장면이 조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주책맞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엄마가 되기 위한 절박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신을 독일 거대 상속녀라며 뉴욕 사교계를 흔들었던 애나 델비라는 사기꾼을 비비안이라는 기자가 취재하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비비안이 만삭 임산부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무거운 몸으로 악착같이 애나 델비 사건을 파헤치는 비비안의 목적은 출산 전 기자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다. 출산하기 전 업적을 남겨 놓지 못하면 아기를 낳고 난 후에는 자신이 돌아올 곳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러한 판단 아래 비비안은 양수가 터지기 직전까지 수건을 깔고 미친 듯이 기사를 쓴다.


'아기를 위해 쉬어야 한다, 병원에 가야 한다, 아기 용품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변의 목소리에 비비안은 이렇게 말한다.


"Fxxx! 이게 바로 내 출산 준비야!"




드라마 중간중간 때로는 절규하듯 때로는 주문을 외우듯 저 대사를 읊는 비비안은 아기의 방을 사건의 단서를 담은 사진과 포스트잇으로 도배해버린다. 그런 비비안을 이해할 수 없다 말하면서도 그 옆에서 조용히 아기 침대를 조립하는 남편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애나 만들기>는 2022년 2월에 공개된 작품이다. 이게 바로 미국의 현주소인 것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삭의 몸으로 아기를 위하지 않는다는 질타를 받으며 고군분투하는 극 중 비비안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로 절박하고 헌신적이다. 비비안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엄마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더라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이었다.


혹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역시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출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비비안은 여자였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절박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절박함은 타인이 범접할 수 없는 그녀만의 무기가 되었다.


그녀의 절규가 안쓰럽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남성과는 다른 한계를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직 사회 경력은 많지 않지만,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회사에서 신입사원의 비중은 여성이 높지만 임원진은 대부분 남성이다.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세상은 아직도 냉혹한 유리천장에 개인의 노력은 무력하게 부서지곤 하는 참담한 모습이다.



고작 드라마 한 편에 곽티슈 한통을 비워가며 나는 어쩌면 인생의 변곡점이 될지 모르는 결심을 했다.


나만의 임신 준비를 시작하자.




임신과 출산으로 절벽 끝에 선 비비안이 그 절박함으로 위대한 기자가 된 것처럼, 나도 이 냉혹한 현실을 발판 삼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담한 현실을 탓하며 낭비하기에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임신 희망 예정일을 약 일 년 앞두고 수능 이후 인생 최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내 인생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나는 이를 <엄마 되기 프로젝트>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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