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이 미뤄지는 현실적인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안 되겠어.
오매불망 아이를 기다리던 남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정도의 반응을 예상했었는데,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에서 남편의 복잡한 심경을 추측할 수 있다.
나보다 일곱 살이 많은 남편은 이미 주변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자녀를 가진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미루어지는 2세 계획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한편, 일곱 살이 어린 나의 입장에서는 이제 막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는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 계획하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대학 졸업 직후 사회에 나간 친구들은 그래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경우가 많지만, 나는 대학원 준비와 졸업 등으로 취업이 늦어진 케이스이다.
서른이 되어서야 직장생활 3년 차에 접어들었고, 이제 조금 자리를 잡아 임신을 계획하고 있던 찰나였다.
아이에 대한 남편의 기대감이 고조되던 그때, 내가 박사과정에 덜컥 합격해 버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던가.
처음에는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면서도 임신은 계획대로 계속 시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합격 통지 후 학교를 두어 차례 오가다 보니 이 상태로 임신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결론에 다 달았다.
임신을 미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 있다.
대학원 행사가 있어 참석을 했는데 회식 자리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적어도 8시면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회식이 끝난 시간을 11시 30분이 넘어서였다.
9시 출근. 14시 오후 반차로 퇴근. 15시 학과 행사 참여. 24시 집 도착.
다소 격렬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서니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현관부터 들렸다.
순간 무서운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상황에서 집에 갓난아기가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가 태어난 후, 오늘과 같은 하루를 맞이했다면 나의 하루는 어땠을까.
우선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하는 것부터가 난제였을 것이다.
어린이집을 다닐 시기가 되었다 하더라도, 어린이집이 마칠 시간 누가 아이를 데리러 갈지 남편과 바삐 연락을 해야 했을 것이고,
운이 좋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왔다 하더라도 길어지는 회식자리에 내 마음은 한없이 초조했으리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마주해야 하는 것은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아니라 아이의 울음소리였을 수도 있다.
그 두 가지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면?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당분간 임신은 안된다.
유례없이 마음이 단호해졌다.
적어도 내가 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2년 간 아이가 태어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생명의 탄생이 나에게 축복이고 기쁨이 되게 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확신이다.
아직 내 뱃속에는 어떠한 생명도 자리잡고 있지 않지만,
임신과 출산을 고려하는 것 만으로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오롯이 자신을 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 생명의 무게를 조금씩 느껴가며,
나는 아이가 빨리 찾아 오지 않아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깨우쳐야할 생명의 소중함이 아직 남아 나에게 아이가 천천히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
당분간은 다시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겠지만,
이 모든 시간이 훗날 찾아올 아이에게 더 큰 축복이 되어 돌아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