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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Aug 24. 2022

아이는 엄마를 고생시키는 존재인가

엄마가 이룬 모든 것은 네 덕분이란다.


엄마 고생시키지 마라.


도대체 어른들은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나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이런 말을 듣고 자란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어른들 또한 같은 말을 듣고 자랐기에 인사처럼, 덕담처럼 때로는 습관처럼 내뱉는 것이다.


어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어린 시절 나에게는 무거운 족쇄 같았다. 홀로 나를 키우는 엄마는 무조건 불행하고 힘든 사람이 되어야만 하고, 그런 엄마를 쉬지 못하고 일하게 만드는 원인은 바로 나의 존재였다. 이 생각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나는 엄마를 고생시키는 사람이구나.


모난 명제가 자연스럽게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나는 예쁜 옷이 가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마다, 요란한 생일파티를 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마다 스스로에게 '그건 엄마를 더한 고생으로 몰고 가는 일'이라고 되뇌었다. 꽤 오랜 시간 나는 엄마의 고생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정확히는 나라는 고생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지속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퍽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엄마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 덕분에 엄마는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어.
엄마가 이룬 모든 것은 네 덕분이란다.


이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엄마를 고생시키는 사람'이라는 명제가 내 안에 너무 깊게 박혀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했던 탓이다. 조금 더 빨리 엄마의 진심을 받아들였더라면 엄마와 나의 마음에 새겨진 수많은 생채기들이 얼마나 많이 줄어들었을까. 유난히 길었던 나의 사춘기를 절반쯤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가 줄을 잇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엄마가 나 때문에 고생했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나는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딸내미가 될 것이다. 물론 말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혹자들에게는 '내가 엄마의 고생'이라는 것이 별다를 것 없는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자녀 하나를 키우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이 5억 정도 된다고 하니, 부모가 되는 일은 사회적 기준에서는 엄청난 희생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저출산 원인에 대해 질문한 결과 '육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32.4%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어디 그뿐인가.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경력단절 사유 1위는 결혼(27.5%), 2위는 임신/출산(21.3%)이다. '여성의 경력단절'은 '육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분명한 요인일 것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에만 약 43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엄마가 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쏟아지는 출산 관련 정책들 속에서도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훗날 태어날 나의 아이에게 '고생'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들 또한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글로 기록하고 싶어졌다. 미래의 내 아이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아가야 너는 엄마(아빠)의 고생이 아니야. 너는 엄마(아빠)를 더욱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란다. 내가 이룬 모든 것은 네 덕분이야."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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