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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Jul 15. 2021

딱히 잘하는 게 없어서 퇴사를 못하는 중입니다만

아이유 ‘스물 셋’

가수 아이유를 꽤 좋아한다.

BTS 멤버가 누군지도 잘 모르지만 아이유 노래는 좋게 들린다. 아이유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15년도에 발표한  '스물셋'이라는 노래 가사 때문이었다.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치우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난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 아이유 '스물셋' 중 -




때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맘 같기도 저 맘 같기도 할 때가 있다. 특히 요즘은 은퇴 생각에서 있어서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한때 '파이어족’ 이란게 유행이었다. (현재도 유행이지만) 은퇴란 것은 MZ 세대뿐 아니라 나같은 3040세대도 한번쯤 꿈꾸는 멋진 말이 되었다.


그렇다. 나도 막연하게나마 빠른 은퇴를 꿈꾼다. 현재 아이유 노래 가사처럼 사랑이냐 돈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기도 하다. 만약 퇴사한다면 다른 회사로 이직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말 은퇴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고민했던 때는 2019년부터이다. 처음에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버겁다는 이유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퇴사를 고민해왔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2년이 넘도록 머리를 싸매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올해까지만 더 버텨보자 하다가 벌써 2021년도 절반이 지났다. 이런 페이스대로라면 내 생각엔 올해도 틀렸다.



난 왜 퇴사할 수 없는 걸까?


내가 다니는 회사는 IT 벤처로 시작해서 지금은 꽤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내가 근무한지 10년 동안 직원도 대략 5배 이상 늘었다. 내 나이가 들어가는 것처럼 회사도 그만큼 커졌다.


처음 입사했을 때 내 파트는 급여를 담당하는 인사 업무였는데 '너 글을 좀 쓴다'면서 6개월 만에 난데없이 홍보파트로 보직이 바뀌었다. 기자도 만나본 적 없고 보도자료를 쓰는 법도 몰랐던 내가, 당시 10년차 차장이 하는 일을 겨우겨우 메꾸면서 버텼다. 경영진은 그런 내 태도가 기특해 보였는지 연봉, 성과, 스톡옵션까지 때때마다 넉넉하게 챙겨주었다.


나도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리수도 서슴지 않았다. 결혼하고 임신해서는 출산 1주 남길 때까지 일을 했다. 당시 육아 휴직은 당연히 보장 받아야 할 자연스러운 제도였다. (심지어 내가 그 제도를 권장하는 관리자였는데) 정작 나는 대표이사의 부탁에 가까운 조심스러운 뉘앙스를 읽어 버렸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가보구나. 생각하고 출산/육아휴직을 5개월만 다녀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장 나부랭이가 대표 마음을 뭘 헤아린다고 그랬나 싶다.


출산 후에도 육아보단 회사 일이 우선이었다. 아이의 돌 잔칫날에 사옥을 이전하는 바람에 돌잔치를 취소하는 일도 생겼고 아이가 감기로 열이 날 때도 회사일이 바쁘면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가 5개월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때, 집안 여기저기에 CCTV를 달고 아이를 돌봄 선생님께 맡기고 출근했다. 그 말을 듣고  아이가 너무 가엽다며 우는 옆집 엄마도 있었다.  정작 엄마인 나는 해야 할 '일'을 보느라 워킹맘이면 어쩔 수 없는거 아닌가 하고 넘겨 버렸지만.


몸을 풀기도 전에 복직한 후에 새로운 업무에 또 투입됐다. 회사 규모가 커져서 신사옥으로 이전해야 했는데, 당시 공사를 총괄하던 팀장이 공사비를 횡령하는 문제가 생겼다. 그 이유로 난생처음 신사옥 공사, 인테리어라는 업무를 새로 맡았고 또다시 내 나름대의 방식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이번엔 경영지원 전반을 맡는 팀장으로 발령 받았다. 그 후, 또 다시 연봉은 더 올랐고 스톡옵션도 받았다.


이건 내 자랑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무식하게 일을 진행하는지에 대한 반성문에 가깝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그런 깡과 자신감이. 아니 그야말로 일종의 무식함이 발동했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이게 문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 대의를 위해서 소가 희생해야지하는 냉혹한 프레임 (무엇이 대의고 무엇이 소소하단 말인가!) 사랑이냐 명예냐 돈이냐에서의 갈등. 그리고 일이 떨어지면 우선 '마냥 울고 있을 순 없잖아. 우선 일부터 마무리하자' 하면서 덤비는 편이다.


과연 이것 뿐일까?

퇴사와 은퇴를 못하는 이유가 꼭 기질 탓만은 아니다.  지금까진 슬픈 이야기로 보이지만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현실적인 이유 말이다.



1. 지금 처우가 별로 나쁘지 않다.

사실 현재 연봉에 불만이 없다.

'고생 → 임금 보상 → 좀 더 센 고생 → 승진/보상 → 너의 더 큰 희생을 기대해 (feat. 갈리는 뼈)'

순환인 것 같은 악순환의 기묘한 로직이 세워져있다.

차라리 덜 대우해 줬으면 받은 만큼 일해도 된다는 생각에 그냥 가늘고 길게 회사에 다녔을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뭐 이런 X 같은 회사가 다 있어! 욕하고 나왔을지도 모르지)


2. 사람에 대한 불만?

회사일에 감정을 소모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사람에 대한 불만도 별로 없다. 저 사람은 타고난 기질이 저런가보다 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자주 보는 사람들은 위아래,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뿐이다. 직장 생활에서 사람 만나는 건 그야말로 케바케, 대운이 깃든 건데 나는 대표, 본부장, 직속 후임, 팀원 하나하나 다 마음에 든다. 가끔 소름 돋는 건 조직 내 또라이가 없다면 그게 바로 본인이라는 '또라이 보존 법칙'에 내가 주인공일까봐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것 정도?


누가 내 뒤통수를 갈기거나 상사가 감정 조절을 못해 소리를 빽 지른다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내가 올린 기안들이 맘에 안 든다며 공중에 흩뿌려 버렸더라면, 또는 상사라는 사람이 내 성과를 가져다가 본인 성과로 둔갑 시키거나 대표이사가 이유 없이 갈궜더라면. 그랬다면 퇴사 생각이 쉬웠을까 틀려먹었다. 죄다 하나같이 나보다 좋은 사람들이다. 심지어 팀원은 종종 내게 위로와 힐링을 주기도 한다.


번지 점프대에 혼자 뛰어내릴 용기는 안 나고, 누가 등이라도 떠밀어 주었다면 퇴사 결정이 쉬었을까?  



3. 육아 '만'을 잘할 자신이 없다.

회사를 10년 다니면서 버릇이 있다. 리스크에 미리 대비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육아의 세계는 온통 돌발 상황이기에 이게 통하지 않는다. 주말에 아이와 함께 나가서 계획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말과 표정으로 육아가 된다면야 잘 할 수 있다. 오은영 박사가 제안하는 것처럼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하는 것은 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육아는 노동이 수반된다. 일종의 고된 수발이다. 이 수발은 임원, 회사 직원이나 시어머니 같은 성인을 수발하는 것과는 결이 좀 다르다. 체력뿐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뉘앙스를 파악해야 하고 인내심이 꽤 요구된다. (회사 일 보다 더)


엄마들 중에서 아이에게 지나치게 이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엄마들끼리 농담엔 '부모가 아무리 성공해봤자 필요 없다. 내 아이 성적이 나쁘면 아무리 잘난 부모라도 전교 1등 하는 아이 부모에게 기가 죽는 게 한국 부모다'라는 말이 있다.


나도 아이가 숫자를 잘 세아리면 내 자식이 Hoxy 천재인가? 하고 기분이 좋겠지만, 아이 그레이드가 내 자존감을 높여주진 않는다. 근데 퇴사하면 왠지 육아에 전념을 다해야 할 것만 같아 두렵다. 그냥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싶은 건데.



4. 소비가 많다.

이번 달 카드값이 얼마 나왔더라. 우리 부부는 가계부를 쓰지 않아서 잘 모른다. 서로 쓸 만큼 쓰고 남은 돈을 모은다. 일일이 파악하기 귀찮아서이기도 하고 서로 별로 큰일을 저지르지 않는 성격이기에 믿는 구석이 있기도 하다. 씀씀이가 크진 않지만 여기저기 나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맞벌이하다가 외벌이로 바뀌는 순간 집 대출금과 생활비만으로도 급여는 바닥이 날 것이다. (내년엔 아이는 영어 유치원엘 보낼까 생각도 하고 있으니까)


욜로와 파이어족은 비슷하면서도 '소비'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욜로는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 하고, 먹고 마시고 쓰면서 자유롭게 살자는 집시 마인드가 기저에 깔려 있다면 파이어족은 소비를 줄여 내면과 본연의 욕구에 집중하는 어느 정도 현실과의 타협점이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소비는 욜로와 파이어족 그 어딘가에 있다.



5. 은퇴한들 또 무슨 일을 벌일 것이고 그 소득은 지금보다 적을 것이다.

심리학에도 기웃 거리기도 했었다. MBTI, TCI, 에니어그램을 조금 안다. 회사 생활을 할 때 사람들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어서 아예 본격적으로 심리학을 더 공부할까 생각했다. 만약을 위한 사회복지사2급 자격증도 있다. 둘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진도를 못 나가고 있지만.  


무엇을 시작한들 현재 연봉을 이길 아이템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결정을 주저한다. 내가 조직의 노예가 되는 거 말고는 이렇게 쌓아놓은 재능이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매월 또박또박 들어오는 월급은 정말 마약이란 말이 맞다.



야, 그러니까 너 별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가긴 뭘 나가.
지금 연봉도 감지덕지지 하고
회사 더 다녀야 해


© charlesdeluvio, 출처 Unsplash



6. 딱히 좋아하는 일이 없다.

 혹자는 지금까지 잘하는 일을 했다면 앞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한다. 작년까진 심리학에 꽤 진심이었다. 그래서 회사에 지원을 받아서라도 대학원엘 다녀 볼까, 조직 심리학이란 과에서 현재 업무와 적성을 살려볼까하고 미리 논문 쓰는 요령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2년 동안 고민한 끝에 심리학의 수지 타산이 안 맞음에,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내가 다른 이의 정서에 관여한다는 게 얼마나 오만이었나 하는 생각에 심리학에 뜻을 접었다. 그 이후로 딱히 신이 나는 일이 없다.


재태크에는 흥미가 있다. 우리 부부는 오늘 유심히 보았던 주식 종목이 저녁 식사 때 주 대화 거리일 정도로 서로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다행히 최근 몇년 간 공부한 덕에 운 좋게 투자한 부동산도 잘 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둘 다 어느 정도 번외 수익을 벌고 있지만 글쎄 이건 고정적인 급여가 아니어서 불안하다. 그렇다고 전업 투자자로 나서기에는 난 아직 주린이다.


어쩌면 회사 다니는 거 말고는 딱히 잘하는 게 없어서, 반대로 말하면 지금 연봉 같은 보상이 나올 만한 곳 아니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려고 재느라 퇴사를 못하는 것 같다.


난 가만보면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팔랑거리기도 하고  매우 게으르기도 하면서 꽤 영악한 면도 있다.


퇴사를 하고 싶은 이유는 꾸물꾸물 생기는데 딱히 이유와 그 후의 대안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또 고민한다.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퇴사하고 아이와 더 좋은 시간을 보낼까?

그냥 돈이나 많이 벌까.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치우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난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 아이유 '스물셋' 중 -


feat. 왼손잡이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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