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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d Mar 25. 2019

일상과 자연의 그 어디쯤

스웨덴, 국립공원과 자연접근권

쿵스레덴에서 돌아온 내 휴대전화와 나는 그 후유증으로 많이 아팠다. 내 휴대전화는 원인 모를 메인보드 고장이라는 중병으로 대략 열흘에 걸친 스웨덴 타임(?)이 지나서야 "고칠 수 없으므로 무상 리퍼를 해주겠다."라는 진단을 받았고,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꼽이 끼는 염증을 동반한 몸의 병과 걷기를 증오하던 시간이 무색하게 몹시 걷던 길을 그리워하게 된 이상한 마음의 병을 얻었다.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일은 쿵스레덴이지만-물품을 인터넷으로 구매, 픽업 및 결제를 위해 방문한 Addnature 직원은 구매한 물품의 양을 보며 도대체 어딜 가는 거냐고 물었고, 쿵스레덴에 갈 예정이라는 말에 보내던 눈빛은 동경의 그것이었다-도시에 근접한 국립공원과 자연녹지에도 걷는자들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웨덴의 헌법은 4개의 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정부조직법(regeringsformen)에서 재산권을 규정한 조항 하단에 "모든 사람은 위에 기술한 것과 무관하게 공공접근권(Allemansrätten)에 따라 자연에 접근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쓰레기를 남기지 말고, 바위 위에선 불을 떼지 않으며, 난초같은 보호식물을 채집하지 않고, 숲 보호기간에 애완동물에 목줄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텐트를 치고 야영-통상 2일내-을 하며 불을 피우고, 버섯과 베리를 채집하고, 물가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공공접근권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가 넓은 땅에 살고 있어 이동이나 여행 중 불을 피우고 채집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북유럽 특유의 행동 양식이며, 스웨덴에선 사람들이 멀리 떠나지 않고도 자연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스톡홀름 근교의 Tyresta 국립공원이나 집근처 자연보호구역내의 트레일을 걷다가 허락된 장소에서 모닥불에 고기를 굽거나 텐트를 치는 일이 가능하다.

다만, 흥미로운건 같은 북유럽인 덴마크에선 걷는자를 위한 트레일은 존재하나 아무데서나 텐트를 치거나 불을 피우는 것을 제한하고 있는 것처럼 각 나라별로 자연이 허락하는 행동의 범위가 다르다. 실제 덴마크에서 열린 피엘라벤클래식 안내서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던 표현이 "스웨덴과 다르게"라는 것이었다.(특히 슬픈건 아무데서나 물을 길어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스웨덴에 있는 29개의 국립공원은 각기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시내에서 펜델톡(pendeltåg)과 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벗어나면 Tyresta 공원이 있는데 큰 호수를 곳곳에 품고 있는 그곳에서 1999년에 발생한 화재로 불탄 숲사이를 거닐며 생각에 잠길 수도 있다. 스웨덴의 가장 큰 섬 고틀란드 북쪽 작은 섬에 위치한 Gotska sandön에는 선착장이 없다. 섬을 바라보며 작은 고무보트가 사람을 실어나르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그렇게 사람들을 내리고 태우며 오가느라 약속된 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는 배를 기다리며 앉은 눈앞에 막막한 수평선이 펼쳐진 곳이다.

평지가 많은 스웨덴에선 기이한 절벽 틈에 펼쳐진 얼음계곡에 준비없이 갔다가 맨몸으로 미끄럼을 타게 만든 Skuleskogen, 노르웨이와의 경계에서 폭포를 보여준 Fulurfjället, 당일용 면허를 구입하면 낚시를 할 수 있는 Färnebofjärden, 여름엔 쿵스레덴을 걷는 사람들로, 겨울이면 오로라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Abisko...언제 다시갈 수 있을까.

스웨덴의 아름다운 숲과 호수와 함께하던 시간은 어느새 내가 다른 길을 호시탐탐 기웃대게 만들었고 길을 걷는 나의 긴 여정은 몽블랑 둘레길,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산티아고 순례길로 이어지게 된다. 계속...

사진: 스웨덴 국립공원 내에는 잠시 머물거나 시기별(통상 성수기)로 예약 후 숙박이 가능한 오두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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