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쿵스레덴(kungsleden)
첫날 머물게 된 케브네카이세 산장 주변. 도착했을때는 날씨가 좋았다. 건조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처음으로 텐트를 펼쳐본다. 산장에서 2km정도 더 가면 멋진 들판이 있다고 했지만 WC가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캠프를 벗어나긴 겁나는 생초보 트레커는 산장 가까이에 머물기로 한다. -앞으로는 DC 뿐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와중에 앞쪽에 텐트를 친 노르웨이 트레커-그는 텐트앞에 작은 국기를 꽂아 두었다-가 과음한듯 보였는데 너무 뚫어져라 나를 "구경"하고 있어서 좀 위축되었다. 여기는 완전한 자연속이어서 내가 더 작아졌을 수도 있다. 물론 두어시간 내로 속속 도착한 사람들이 빈자리를 어느정도 메워줘서 이내 마음이 편해졌지만..
날씨가 갑자기 안좋아졌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엉성하게 친 텐트를 거세게 흔드는 바람에 일어나서 우두커니 앉았다. 나는 혼자 여기서 무얼하고 있는거지? 오늘하루 동행했던 min과 그의 아버지는 내일부터 나의 친구가 되어줄 예정이다. 첫날의 고독함과 두려움이 낯선 이들에게 내 마음을 열어주었다. "누나, 저 아킬레스건이 아파서 쉬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건넨 말에 걱정을 해주며 나는 길위의 친구를 얻었다.
min은 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에게 효도관광(?)을 시켜드리기 위해 트레킹을 난생 처음 시도한 초보였다. 5일내내 그 친구와 했던 말은 낙오해서 난생처음 스웨덴 헬기를 타볼까? 둘이 비용을 나누면 그리 큰돈 들이지 않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거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길을 걷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트레킹을 마치고 노르웨이 여행을 떠난 그 친구는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장소 중 두군데를 다녀왔고, 나는 스웨덴에 머물던 2년 내내 길을 걸으면서도 길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5일 중 4일간 간간히 내린 비에 우비를 자주 입고 벗어야 했는데 배낭위에 얹은 매트때문에 혼자 우비를 입는게 쉽지 않았다. 우비와 사투를 벌이는 내 모습에 스웨덴 사람들은 말없이 다가와서 매무새를 만져주고 가곤 했다. 수줍은 그들이 같은 북유럽 안의 덴마크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는걸 알게 된건 한참뒤의 일이다. 그렇게 사람과 부대끼며, 날씨에 좌절하며,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왜 라고 끊임없이 반문하다가 마주한건 결승점에서 맥주한잔을 들고 있던 또다른 나였다. 계속...
사진: 스웨덴 피엘라벤 클래식에서의 기억은 나를 덴마크 클래식으로 이끌었다. 덴마크에서도 비와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