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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d Oct 07. 2018

바람 한자락 잡으려 걷던 시간

스웨덴, 쿵스레덴(kungsleden)

쿵스레덴, 그곳에서 만났던 누군가는 내게 물었다. 걷는 것을, 산을 좋아하냐고. 나는 답했다. 숨만 쉬며 살아왔던 사람이라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어서 청계산을 올랐을 때도,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엔 가보고 싶어 한라산을 올랐을 때도 일종의 성취감 같은 것을 맛보았지만 등산이라는 것은 내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었다. 힘이들어 과하게 붉어지는 얼굴도 싫었다. 그런 내가 지난 2년간 걷고 또 걷게 되었다. 그 시작은 스웨덴 북부에 있는 쿵스레덴, 왕의 길에서였다.

2년간 유럽의 한 나라인 스웨덴에서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스웨덴으로의 출국이 결정된 이후 종종 시청하는 한 여행프로그램에서 스웨덴의 유명한 트레일을 소개하고 있었다. 전세계 트레커들이 찾는 그곳에 스웨덴에 거주하는 동안에는 한번쯤 가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65리터짜리 배낭과 등산화만 챙겨서 스웨덴으로 출국하게 되었다.

스톡홀름에서 집을 구하고 주민등록을하고 은행계좌를 개설하고.. 생활을 위한 기본 세팅에 무려 한달이 걸렸다. 쿵스레덴(kungsleden, 왕의 길)에서의 트레킹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스웨덴은 공산품에 부과하는 부가가치세율이 25%에 달해서 스웨덴 브랜드의 아웃도어 물품이 오히려 한국에서 더 싸게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의외였다.

쿵스레덴은 스웨덴 북부의 아비스코(Abisko)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400km 가량 떨어진 해마반(Hemavan)까지 이어진 길이다. 중간마다 잠을 자고 음식을 구할 수 있는 산장이 있는데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텐트에서 밤을 보내며 걷고 또 걷는다.

트레킹 생초보였던 나는 부상을 당하거나 길을 잃을지도 모를 걱정에 피엘라벤(fjällräven)이라는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피엘라벤 클래식을 통해 쿵스레덴을 접하게 되었다. 피엘라벤 클래식은 니칼루옥타~케브네카이세 산장~샐카로 이어지는 길을 거치고 샐카에서 쿵스레덴과 합류, 아비스코까지 총110km에 이르는 트레일을 통상 4박5일(개인 체력에 따라 조정)에 거쳐 걷도록 구성되어 있다.

전세계에서 모인 수백명의 트레커들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설레는 발걸음을 내딛어본다. 텐트와  몇일간 먹을 건조식, 옷가지를 넣은 배낭은 14kg 정도. 한국에서 온 젊은 친구들보단 가볍다. 숲을 지나고, 호수를 바라보며 걷다보면 원주민 사미족 청년이 랍다날드-그곳의 지명은 라플란드이다-에서 파는 순록버거를 먹으며 허기를 달랠 수 있다. 눈이 녹아내려 흐르는 계곡물은 "물맛"이라는 단어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모든것이 처음이어서 낯설고 신기하고 힘들었던 하루의 끝을 알리는 케브네카이세 산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후 맥주 한캔으로 나를 위로하고 칭찬했다. 계속...

사진: 트레킹 스타트포인트로 이동하기 전 스웨덴 북부 키루나에 있는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트레킹 중 고장난 휴대전화덕에 모든 사진은 사라졌고, 메신저 대문사진에 걸어놨던 위 사진이 유일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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