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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08. 2023

유럽우체국5_그녀의 부엌

우리의 마지막 여행

베를린에 머무는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관광보다 더 기억에 남은, 더 떠오르는 추억은

바로 베를린에서 머무른 에어비엔비이다.


돈이 넉넉치 않던 유학생인 나와, 유럽인이나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S는 인스타그램에 나오거나

호텔사이트 상단에 보이는 멋지고 고급진 숙소를 고르는 건 애초에 선택지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루에 웬만하면 80유로 아래였음 좋겠는데...."

라는 생각으로 에어비엔비 어플과 베를린 구글맵을 동시에 켜놓고 몇날 몇일을 고심하던 끝에 고른 

베를린 외곽의 작은 방!(전체 집이 아닌, 작은 방 하나!)

플랫메이트가 조용하고 집에 잘 없다고 하니까 괜찮을거야 라며

우리는 그렇게 그곳으로 정했다.


그렇게 도착한 추운 12월 넷째 주의 베를린.


우리의 방은 생각보다 넓었고, 따듯했고, 방의 주인인 예술가(아마도)가 작업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드로잉과 책과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녀와 키우는 식물들, 가지런히 정돈된 만년필과 연필들.


아 그렇지 여기는 베를린, 예술가들의 도시.


그래도 그렇지, 주방은 정말 너무했다.

너무 예뻤다.


말도 안돼 스윗 지져스! seriously?!

크기별로 작고 큰 나무손잡이 냄비들이 동글동글 찬장에 웅크리고 있었고

허브,바질,로즈마리,쿠민,자스민 수많은 향신료들과 허브들이 조로록 깨끗이 라벨이 붙은 낡은 유리병에 담겨져있었다.


작고 깨끗하고 밝고 좁고 길던 그녀의 부엌.

키가 큰 S는 다리를 펴지 못한 채 밥을 먹어야 한다며 툴툴댔지만, 

come on, 우리 겨울 60유로를 내고 쓰는 집이야, S.


주홍색 지붕이 바라보이는 창밖의 뷰는 특별할게 없었지만 나는 그때부터 알았다.

아, 이곳은 기억에 오랫동안 남겠구나.

빌라 4층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stranger things디자인의 발카펫이 깔려있는 아랫집 304호가 있었다는 사실마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지금까지 나의 기억속에 있다.


여행내내 한번도 키스를 해주지 않던 S에게, " 왜 너는 나한테 키스안해?" 라는 말끝에 

아무감정없는 키스를 받고 무덤덤히 아무렇지 않아하는 나에게 스스로 놀라며

그럼에도 함께 이불을 덮고,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주던 우리의 마지막 여행을 기억하게 해주는 에어비앤비.


아름답고 무덤덤하고, 기억속에 오래남는 건 S, 너와 그 숙소 둘다야.

네가 만들어주던, 우리가 미처 다 마시지 못하고 남긴 핫초콜릿을 기억할게.


벤쿠버에서, 새벽 2시의 제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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