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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16. 2023

장마와 기억

3분카레와 짜장의 맛

여름이 오고 한국에 장마가 시작되어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진다는 기사를 듣게 될 때면,

매년 어수룩히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은 되었을까 싶게 십년도 넘은 기억은 이유없이 추억상자에서 '여름'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7월 중순, 장마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갓 발령받은 동사무소에서 힘이 없던 공무원 엄마와 각종 사건사고를 취재하느라 다른 달에 휴가를 쓸 여유가 없던 아빠는 꾸물꾸물한 날씨를 애써 무시한채 강원도의 한 공무원 연수원으로 어린 나와 동생을 데리고 휴가를 갔다.


말이 연수원이지, 나는 동네 여관같았던 단촐한 방과 빙글빙글 돌아갔던 계단,공용부엌, 쏟아지는 비를 기억한다. 장대비를 뚫고 맛집을 찾을 기력도, 스마트폰으로 배달을 시킬 수 있던 시절도 아니었던 그때에는 마트에서 사온 3분 카레와 짜장, 냄비밥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공용부엌에서 물을 긷고, 데우고, 어딘가 약간 어설프게 된 것같은 밥 위에 카레와 짜장을 섞어먹던 7월의 강원도에서의 휴가는 엄마아빠에게는 좋게 기억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린 딸을 둘이나 데리고 먼 강원도까지 무덥고 비오는 날씨에 놀러오는 것이 쉬웠을까. 물회나 장칼국수같은 지역맛집도 아닌 서울에서 3시간이나 운전해와서 먹는 즉석식품이 반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의 기억에는 모든 것이 마냥 즐겁고 맛있었다. 조금 설익고 바닥은 탄 냄비밥도, 아빠가 든 물 동이를 나눠들겠다고 우겼던 어린 나도, 무덥고 습한 방안도 그저 그때에는 그 이상 완벽할 수 없었던 것같다.


나의 기억은 너무나 터무니 없이, 이유없이 이렇게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소리와 냄새까지 기억한다.

그 시절에만 유일했던, 어린내가 느꼈던 그 방의 공기,습도,감정 그리고 기분까지.


다시 한국에는 전국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추억들이 생겨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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