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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23. 2023

사람으로 충전하는 시간들

그리고 꽃 한다발의 힘

요근래 스트레스가 좀 있었다.

누구는 스트레스 없이 살겠느냐만은 잠에 들어서도 계속 꿈에서 일하면서 실수하고 잘못하는 해프닝이 반복되니 잠을 자도 잔것같지도 않게 찌뿌둥하고 일어나서도 머리가 아픈 날들이 계속 되었다.


상사는 나쁜사람은 아니지만 모든 일에 본인만의 엄격한 패스라인이 있었고 그 패스라인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picky해서 디자이너 겸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나로 하여금 불안함을 가지고 일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콘텐츠업무는 책상에서 앉아서 하는 편한 일이니 키친업무를 도와주라거나 새로운 메뉴사진이 하나하나 다 필요한데 3일내로 완성하라거나(한번에 오케이 해줄것도 아니면서!-참고로 나는 파트타임으로 근무중이다) 하는 이런 자질구레한 멀티테스킹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제대로 된 오피스도 없이 그릴 옆에서 일하는 나에게 초조하고 불안한 환경을 제공한 셈이다.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조용한 오피스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건 바라지도 않는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의 무능력과 초조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점점 심신이 눌려감을 느끼던 어느날 가끔씩 하는 프라이빗 케이터링 서버일을 간만에 하게되었다.


이번에 케이터링 이벤트가 위치한 곳은 웨스트밴쿠버의 어떤 고급주택. 한적하고 크고 멋진 집들과 반짝거리는 비싼 스포츠카들이 줄지어 서있는 부자동네의 한 맨션에서 20명 가량이 참석하는 프라이빗 와인 디너였다. 버스를 타고 걸어서 도착한 맨션의 첫 인상은, 와!!!!!!!!!!!!!!!!!!!!!!!였다.


뭔가 엄청나게 꾸민느낌이 나는 건 아니지만 나무, 펜스, 꽃, 정원, 잔디, 분수 모든 요소들이 너무도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섬세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정말 그림같은 3층 저택이었다.

6시간 가량의 서빙을 마치고 땀에 젖어 뒷정리를 하면서 '나도 이런 집에서 이웃,친구,가족들과 함께 이런 파티를 즐기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주인 내외가 '가지 말고 기다려!'라고 하더니 테이블에 놓였던 꽃병에서 꽃다발을 한아름 만들어 가져가라고 주는 것 아닌가. 

본인이 직접 꽃을 사다가 만들었다며, 오늘 수고해줘서 너희 덕분에 너무 즐거웠다며 한아름 안겨준 노란꽃다발은 내가 몇주간 받은 스트레스를 없애기에 충분햇다.


그래, 어쩌면 내가 필요로 했던건 이런 것일지도 몰라.

너의 일을 열심히,잘 해줘서 고맙다. 수고했다. 그리고 마주보는 웃음과 좋은 밤을 보내라는 인사.


이런 배려와 여유도 경제적인 여유에서 나오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그들의 태도에 나는 warm hug를 받은 느낌으로 머리가 가벼워지게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는, 또 사람의 태도와 배려로 치유되는구나.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한아름 꽃을 안고 걸어가는데 건너편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오던 행인의 웃음섞인 농담 "그거 내꺼야?", "아니!내꺼야!" 라고 말하며 서로 깔깔 웃으며 지나쳐가는 저녁 7시의 웨스트 밴쿠버의 거리.


캐나다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자연을 제치고, 나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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