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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Jul 25. 2018

도시재생 에세이: "도시, 살다"

프롤로그

프롤로그의 프롤로그


"유진, 우리 만나서 이야기 좀 할까?"


가능하면 빨리 만나자는 스타이벌스(Stivers) 교수님과의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영어가 짧아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한국 동료들의 전화 외에는 거의 모든 전화 연결음이 공포스러웠다. 스타이벌스 교수님과의 통화 역시 쉬울 리 없었지만 다행히도 내용이 간단했다. 빠른 시간 안에 만나자고 하시고, 대강의 약속 시간을 잡고 전화를 끊으신 것이다.


그런데 교수님의 용건이 내게 달가운 내용은 아니었다. 내 영어 수준이 형편없으니(물론 그렇게까지 악평하신 것은 아니지만) 비록 박사과정이라도 ELS 영어 클래스를 학부에서 1년 정도 듣고 당신과 본격적인 연구를 해 보는 게 어떻냐고 하셨다. 난 머리가 복잡해졌다.


1년을 온전히 영어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면, 내 영어는 부쩍 늘겠지만, 시간이 지체되는 만큼 돈도 훨씬 더 필요할 것이고 박사 학위가 늦어짐에 따라 내 삶의 시간표도 지체되는 것만 같았다.


다시 난 면담을 요청하고, 비록 내가 영어는 부족해도 통계 프로그램은 잘 다루니 주로 통계와 관련된 일을 시켜주시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다. ESL 수업 듣는 것은 사정 상 쉽지 않겠다고 말도 덧붙이고. 그런데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유진, 내 논문에 숫자는 페이지 넘버(쪽수) 밖에 없어. 모든 것이 워드(글)란다."


눈 앞이 캄캄했다. 스타이벌스 교수님은 시민참여 분야의 대가셨다. 석사에서 지방자치를 전공한 나는 그녀의 학생으로 박사과정에서 공부할 수 있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로지 글만으로 논문을 쓰시는 교수님 입장에서 내 부족한 영어 실력은 무척이나 답답했을 것이다. 비록 늘 인자하게 웃으셨지만.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1년 동안 영어 클래스만을 들으며 허송세월(그때는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해야 하나, 아니면 새로운 지도교수님을 찾아야 하나. 굉장히 힘든 시기였고, 고민이었지만 가벼웠던 내 통장 잔고는 빨리 새로운 지도교수님을 만나 약속받은 장학금을 지급받으며 대학원 조교로서 일을 해야 한다고 보채고 있었다.


소문이 들려왔다. 사이먼스(Simons)라는 교수님이 지도학생을 모집하고 있다고. 학교 홈페이지에서 그의 프로필을 볼 수 있었다. 환경경제학 박사. 이 학문이 정확히 뭘 연구하는 분야인지 알리가 없었다. 환경공학이면 오염 등에 관해 실험할 것 같고, 경제학이면 보이지 않는 손, 케인지안 등등 이런 것 연구할 것 같은데 두 단어가 붙어 있으니 뭘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면담을 신청했다.


이력서를 들고 사이먼스 교수님 연구실을 찾았다. 미리 연락드렸고, 이력서도 이메일로 보내드렸으므로 이력서 자체는 거들떠 보시지도 않으셨다. 하지만 궁금하셨는지 이렇게 물어보셨다.


"유진, 왜 캠(Stivers 교수님의 애칭)을 떠나 나한테 온 거니?"


농담조로 물으셨는데 궁금하셔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다. 영어가 부족하지만 난 통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 않고, 통계 소프트웨어를 잘 다룬다고.


그랬더니 사이먼스 교수님께서 시크하게 한 마디 내뱉으셨다.


"우린 영어로 대화하지 않고, 함수(function)로 대화할 거란다."  


눈물 날 정도로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바로 내 조교 자리를 지정해주시고, 장학금 신청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이렇게 내 학문 분야가 지방자치에서 도시재생으로 바뀌어버렸다. 환경경제학 박사인 사이먼스 교수님의 최근 연구는 도시재생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환경학과 경제학이 만나면 도시를 살릴 수 있다고 그 분은 늘 말씀하셨다.

 

도시재생은 아픈 도시를 치료하는 것


도시재생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Urban Regeneration을 많이 사용한다. 사실 여러 책들을 참고해보면, 도시재생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는 시대에 따라 재건축을 의미하는 Reconstruction에서부터 진화하여 Revitalization, Renewal, Redevelopment, Regeneration까지 변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사이먼스 교수님은 도시재생을 표현하고 싶을 때, 반드시 Rehabilitation이란 단어를 활용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도 도시재생의 영어 단어로 Uraban Rehabilitation을 쓰도록 추천하셨다. 환경경제학을 전공하시면서 동시에 부동산학을 전공하셔서 건물 하나하나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진 Rehabilitation이란 단어를 활용하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Rehabilitation은 의학용어로써 '재활'을 의미한다. 사고 등으로 인해 신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다시 본래의 몸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치료가 바로 '재활'이다. 도시재생이란 바로 도시를 치료하는 것 아닐까. 치료해서 우리가 원래 살았던, 혹은 살만했던 그 도시로 회복시키는 것. 치료에는 진단이 필수적이고, 그 진단 결과에 따라 아픈 도시에 맞는 치료프로그램을 적용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재생이라고.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사이먼스 교수님 역시 그런 의미를 담고 계셨다고 믿었다.


도시 곳곳에 건설이 중단된 건물이 버려져 있다. 누군가의 눈물이 섞여 있을 것이다. 


건물이 미완성된 상태로 버려지면 도시의 아름다움도 사라진다. 


도시, 살다


"도시, 살다"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살아나는 도시의 이야기, 그리고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난 이 책에 우리의 도시들이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담고자 한다. 그 안에 우리들의 이야기도 곳곳에 묻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다. 따라서 복잡한 이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깊이 있는 지식의 습득을 통하여 시험을 준비하거나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더 훌륭한 도시학과 도시행정 관련 서적을 추천한다. 다만 이 책에는 적지 않은 도시재생에 관한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들이 내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담길 것이다. 쇠퇴하는 도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활동가, 각급 정부의 공무원, 학문 후속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료할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지방이 소멸될 것이라 말한다. 저출산 고령화는 심각해질 것이고 빈부의 격차는 확대되어 우리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 모두 이야기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쇠퇴하는 도시에도 희망이 조금씩 보인다. 그 희망을 이 책에 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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