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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Apr 06. 2024

80. 가치는 비교해야 존재하고 상생한다

도덕경 제2장

온 세상

모두 미가 미이면 이것은 추함이 끝난 줄로 알고,

모두 선이 선이면 이것은 불선이 끝난 줄로 안다.

사실 가치개념비교해야 존재하고 상생한다.


그래서

있음과 없음은 서로 북돋우며 같이 살며,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도와 일을 이루고,

긴 것과 짧은 것은 서로 비교해 존재하며,

높음과 낮음은 서로 대보아 한쪽이 기울고,

나오는 소리와 듣는 소리는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른다.

개념은 비교 대상과 기준에 따라 늘 변한다.


그래서 성인은

의도로 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고,

말 없는 가운데 가르침을 행하며,

만물을 짓고 거절하거나,

싫다고도 하지 않으며,

낳아도 소유하지 않고,

위하고도 의지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 머물지 않는다.

그저 머물지 않을 뿐,

이에 공이 안 떠난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형, 고하상경, 음성상화,

前後相隨. 是以聖人,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전후상수. 시이성인,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부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미추, 선악 등의 가치나 개념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가치나 개념이 아니다. 비교할 때만 인식할 수 있고 인식 주체나 비교 대상에 따라 변한다. 상대적 가치나 개념은 쌍으로 존재하고(‘상생’), 관계를 맺으며 관계에 따라 상대적으로 인식된다(‘상대성’).


가치나 개념은 상대적이므로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없다. 자기 생각만 늘 맞다고 주장하거나 남에게 강요하지 못한다. 또한, 과거의 공덕에 얽매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과거 공덕은 지나간 일로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다.


'세상의 가치와 개념은 상생하며, 서로 관계를 맺고 비교해야 존재한다.'

인간이 생각하고 정하는 미추, 선악의 가치와 윤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가치와 윤리는 공존하며,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미와 선은 비교 대상인 추와 악이 있어야 존재한다. 또한, 미추와 선악의 가치와 개념은 비교 대상이나 기준에 따라 변하고 반전될 수 있다. 차이는 있지만 우열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려움과 쉬움, 길고 짧음, 높음과 낮음, 말하는 소리와 듣는 소리, 앞과 뒤라는 개념도 공존하며, 상대적이다. 둘은 서로 생기게 하며, 서로 관계를 맺고 비교해야 비로소 각각 존재한다. 예를 들면 자가 하나 있을 때는 길거나 짧다고 말할 수 없다. 다른 짧은 자가 있으면 긴 자고, 다른 긴 자가 있으면 짧은 자다. 자는 길고 짧음이 없다고도, 길고 짧음이 관계를 맺고 서로 생기게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오는 소리와 듣는 소리는 서로 어울린다는 말(音聲相和)은 말의 공존과 상대성을 표현하고 있다. 나오는 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존재하고, 들리는 소리는 나오는 소리가 있어야 존재한다. 또한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주파수 대역이 다른 생명체는 다른 느낌으로 들을 수 있다. 음(音聲)은 마음속에서 발생하여 밖으로 표출되는 소리고, 성(聲)은 부딪혀 귀에 들리는 소리다.


앞과 뒤는 서로 붙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말(前後相隨)도 앞과 뒤의 공존과 상대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리본의 앞면과 뒷면을 본다고 하자. 앞면이 생기면 꼭 뒷면이 있다. 사람들은 항상 앞면과 뒷면이 독립적으로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보는 사람에 따라 앞면이 될 수도, 뒷면이 될 수도 있다. 앞면은 보는 각도에 따라 뒤집어질 수 있다. 또한 앞면과 뒷면이 따라 없을 수도 있다. 앞면의 끝과 뒷면의 끝을 이어 붙여 뫼비우스 띠를 만들면 앞면과 뒷면이 붙어 있어 따로 앞뒤가 없다. 단면을 보면 앞과 뒤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단면을 연속선상에 보면 앞과 뒤가 서로 따르고 있어 우리가 믿는 상식은 여지없이 깨진다.


우리의 인생도 연속선상에 보면 앞과 뒤가 반전되며 앞뒤라는 것이 따로 없다. 팀과 팀원들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들은 늘 자기 것 못 챙기고 손해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길게 보면 리더로서 인정받아 손해 본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 생각대로 안 하고, 말로 명령하지 않으며, 공덕에 집착하지 않는다.’

성인은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는다. 세상의 가치나 개념은 공존하고, 상대적이다. 어느 하나를 없애거나 하나만 맞다고 할 수 없다. 상황이나 인식 주체의 생각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가치나 개념이다. 머릿속에 고정관념이 있으면 사물의 어느 하나의 가치나 개념이 맞다고 우길 수 있다. 고정된 마음을 비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마음은 과거 경험, 지식, 의욕, 자기 생각 등으로 채워져 있다.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신호를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왜곡시킨다.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잃어버리면 물건을 잃어버려 찾고 싶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주변이 안 보인다. 옆 친구가 보통 때와 똑같이 행동해도 수상쩍어 보인다.


자기 생각을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자기가 한 말이 맞다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한 환경이나 입장이 다르면 판단도 달라진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행동이 아니며, 상대에게 미움을 산다. 구성원이 스스로 하고 싶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 후 스스로 하게 한다.


또한, 과거 공덕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에는 공덕이었으나 상황이나 입장이 바뀌면 판단도 달라진다. 자기는 공덕이 있다고 생각하나 다른 사람은 달리 생각할 수 있어 과거 공덕에 집착하지 않고 그냥 각자 알아서 평가하도록 공덕을 놓아준다. 사람들은 공덕을 베풀고 그 공덕에 해당하는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노자는 다르게 주장한다. 공덕을 행하고도 공덕을 행했다는 생각이 없어야 높은 공덕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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