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니까 오늘이 새해 첫날 맞겠지. 아침에 보송이 손을 잡고 등원하는 길이었다. 나온 김에 당근 두 건을 해결하고 가려고 바리바리 싸들고 나왔다. 주말 동안 새해라고 대청소를 한 결과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쓰레기와 플라스틱과 종이를 내다 버리면서 내 삶이 이렇게 지구에 해가 되는데 괜찮은 건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와서 아이를 들여다보내고 하루 일정을 머릿속으로 굴려봤다. 이따 오후에 보송이 학교 입학 예비소집에 가는 게 오늘의 제일 중요한 외부 일정이다. 아니 예비소집이라니. 벌써 막내가 초등학교를 간다. 정해져 있던 일이라 새삼스러울 건 없는데 오늘은 새삼스러웠다. 그동안 이 상황에 대해 제일 압도적이었던 감상은 "이제 1시에 애가 집에 온다 망했다!"였는데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아이들이 엄청 커버리고 있다는 것... 이제 우리 집엔 영아도 유아도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요즘 가속이 붙은 것처럼 빠르게 자라고 있다. 팔다리가 길어지고 머리가 단단해지고 발음이. 행동이. 몸짓이. 뒷모습이... 낯설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내 삶을 곧 스쳐 지나갈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떡하지? 그러면 갑자기 슬퍼졌다.
매년 성장 앨범을 만든다거나 매년 가족사진을 찍어둔다거나 하는 멋진 일을 하나도 해 두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진과 산발적인 기록들 뿐이다. 이걸로 나중에 어린이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내 삶에 벌어진 가장 드라마틱하고 멋진 일인데. 지금까지 그랬듯이 미래에도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겠지만 가끔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비책이 필요하다. 어떻게 잡아둘 것인가. 믿을 수 없는 내 기억 말고 이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저장할 것인가. 이 생각이 자꾸 나는 걸 보면 절박해지고 있나 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단 말. 왜 이렇게 빨리 컸지?
올해엔 많이 쓰기로 했다. 북클럽도 하고 글쓰기 수업도 할 건데 준비하면서 차근히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아마 원고도 쓸 거고, 생각해두고 있는 몇 가지 주제들도 어떻게든 꺼내어보려고 한다. 이미 완성된 것을 짠 내보내고 싶은 건 오래된 욕심. 욕심을 버리자. 왜냐면 그게 별로 도움이 안 됨. 기복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내어놓기가 올해의 주제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포근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써둔 것도 많지만 아이가 더 클 때까지 몇 년은 더 묵혀야 할 것 같고. 보송이는 이미 이야기 그 자체. 무릎을 꿇고 보송이를 안을 때 느껴지는 그 기분은 적어두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올해는 할 이야기가 정말 많다. 수다쟁이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