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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Dec 26. 2022

부르르도르르탁탁탁 신호를 보내줘

가족들이 잠든 밤에 나는 종종 소파 끝자리에 앉는다.

간이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펴고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이 때는 음악도 틀지 않는다. 키보드 치는 소리만 나도록 둔다. 조용한 시간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그보다는 거실 끝 한구석에서 무슨 기척이 나는지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다. 탁탁탁, 하거나 부르르르 하는 소리를 기다린다.


올여름에 참새 가족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정확히는 우리 집은 아니고 우리 집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와 외벽 사이 작은 파이프 구멍에 참새의 집이 생겼다. 거기에 누군가 있다는 걸 처음 안 건 거실에서 들리는 탁탁탁, 하는 소리 때문이었다. 거실 끝 벽면, 아랫부분에서 누군가 자꾸 벽을 두드리는 것 같은 묘한 소리.


알고 보니 확장을 한 거실 구석 그 자리 벽 자리가 바로 그, 외벽. 파이프 관 구멍이 있는 외벽이었다. 다란 새들의 집 끝이 우리집 거실의 벽인 것이다.





베란다 좁은 틈새로 살펴보니 참새가 나뭇가지와 솜털 같은 것을 물고 드나들며 바지런히 집을 짓고 있었다.

나는 새를 정말 사랑한다. 어릴 때부터 새와 인연이 많았고 길에서 새를 구한 적도 데리고 와서 키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우리 집에 제발 새들이 와서 집을 짓고 살았으면 하는 소원이 늘 있었다.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왜 하필 그 자리람? 여름에 에어컨을 켜면 거기가 얼마나 덥고 시끄러울 텐데. 거긴 좀 아니잖아, 조금만 위로 올라가봐 거기에 우리 집 옥상이 있어 거기로 와 얼마든지, 아는 친구들 다 데리고 와서 마을을 이루어도 좋아.... 응?


제발 나가라고 애원하는 마음으로 벽을 콩콩 치기도 하고 일부 창문을 열고 번잡스럽게 굴었다. 여긴 집 지을 곳이 아닌 걸 알아차리길 바라면서. 하지만 참새는 그러거나 말거나 꿋꿋하게 집을 지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참새들이 태어났다. 그것도 소리로 알았는데 뾰뾰뾰 하거나 도도도, 하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기 때문이었다. 정말 귀여운 움직임이 벽을 통해 들려왔다.

그 결과 올해 여름은 어땠는가. 나는 올여름만큼 더위에 강해진 적이 없었다. 에어컨을 틀려하면 아기 참새들한테 미안해서 도저히 켤 수가.. 여름이면 하루종인 에어컨을 켜던 내가 참새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참는 꼴을 보고 남편은 그랬다. "참새들도 적응하겠지!" 하지만 적응은 내가 더 잘했다. 나는 역대급으로 에어컨을 적게 켜는 여름을 보냈고, 그 대신에 종종 베란다에서 아기 참새들이 나는 연습을 하고 우리 집 안쪽이 궁금한듯 기웃거리며 들여다보는 것을 훔쳐보았다.


나는 겨울에 참새들은 어디에서 뭘 하고 사는지를 몰랐다. 나무 밑이나 건물 사이를 지날 때 여름처럼 참새들이 재잘재잘 떠들지 않아서, 겨울엔 다들 어디로 가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그 벽에 참새가족이 없었다면 계속 몰랐을 텐데.  참새들은 겨울밤에 집에 있다. 여름처럼 밤이 되면 집에서 잠을 자고 겨울을 보낸다.


유별나게 추웠던 요 며칠 동안 나는 참새 생각을 많이 했다. 얼마나 추울까. 무사히 지낼 수 있을까. 날이 추워지면서는 탁탁탁, 소리보다는 부르르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건 새들이 몸을 떨며 털을 부풀리는 소리다. 부르르, 소리가 나면 많이 춥구나 마음이 짠하면서 동시에 아직 거기에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밤도 조마조마한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부르르르, 도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치의 안심이다. 가끔은 그럴리는 없겠지만 참새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가 닿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매일 핫팩을 새로 붙여 놓는다. 그건 무사히 지내라는 나의 신호다. 참새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 겨울이 빨리 지났으면, 추위가 제발 물러갔으면 하고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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