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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an 09. 2023

기적은 우연처럼 나타나선

책방지기와의 대화는 부드럽게 술술 흘러갔다.

그 술술 흐르는 대화는 전적으로 낯선 사람을 맞이해 주는 그의 말투와 웃음이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것에 흠뻑 취해서 사실 그날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워낙 내 기억에 시간 개념이 희박하기도 하지만, 그날 이후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꿈같은 일들! 그날 오후에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지만 그 후에 우리가 쌓아가는 일들을 생각하면 그걸 그냥 우연이라 하기엔 표현이 부족하다.


그날 책방 지기는 나에게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물었다. 당연하고 뻔한 질문 같지만 지난 세 곳의 서점에서는 듣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물론 안 물어도 내가 말을 했지만. 아무튼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어 책방 지기에게 '어떻게 이 책방을 열게 되었는지' 물을 수 있었다. 질문이 있었기에 대화가 시작될 수 있었다는.

     

-결혼하고 애 낳아 키우는 10년 동안 저는 제가 너무 평범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남들도 그렇게 봐주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가슴이 답답하고 자꾸 화가 나더라고요. 채워지지 않는 욕구불만이 있는데 앞으로도 채워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어요. 내가 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오게끔 만든 어떤 행복에 대한 상이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정말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았거든요. 아 뭔지 알아요 그렇죠 알죠? 그런데 더 미치겠는 건 어디에 가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지금 되게 위기인데, 남들에게 인정받기엔 충분하지 않은 불행인 것 같은 거예요. 아아 그 말이 웃기지 않아요? 불행이 충분하지 못하다니... 아무튼 가정 내에 어떤 가난 폭력 그런 명확한 문제가 없으니까요. 남들한테 인정받지 못하는 불행을 품은 나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때로는 열등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아무래도 다들 나랑 비슷한 상태인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토론하는 것도 금기시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서 글을 썼어요. 그래서 쓰기 시작했는데, 브런치에 연재를 하다 보니 어떻게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서 책이 나오게 되었어요. 맞아요. 맞아요. 저도 정말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책을 읽었고 그렇게 책방을 저지르게 되었어요.



역시 책을 쓰는 것과 책방을 여는 것엔 닮은 점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나이도 같고, 엄마라고 불리고, 엄마가 된 후로 살아온 모습이 비슷하고, 이제 막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는 것도 닮았다. 시작. 역시 시작은 참 좋은 거다. 시작했기 때문에 오늘 이런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날도 온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작했으니까 멈추지 말고 계속 버텨보자고 했다. 그러자 책방에 오는 사람들 중 끊임없이 시작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책방지기가 말해 주었다. 저도 꼭 이 사람처럼 나이 들 거예요. 네! 저도요. 그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문득 내가 어리고도 강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책과 책방이 그렇듯이 작가와 책방지기도 함께 어울리면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또 한 번 닮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걸 누가 먼저 말했더라? 아무튼 누군가 그 말을 했는데, 그게 바로 시작이 되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 오후가 그냥 우연일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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