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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pr 21. 2022

틴더를 깔았습니다

2022년 4월 3일

당신에게


틴더를 깔았습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그 '데이팅 앱'이 맞습니다. 동아프리카 섬나라에서도 틴더가 되느냐고 물으신다면, 네 그렇습니다. 지구 상 어디든, 심지어 전쟁통에서도 꽃 피는 게 사랑이라더니. 풀이 좁아서 그렇지, 현지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꽤 있더군요. 왜 갑자기 틴더를 깔았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딱히 외로운 건 아니었습니다만, 동료들과 나눌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죽도록 지루한 오후 두 시를 보내고 있을 당신에게 ‘야, 아프리카에서 틴더 돌려본 썰 푼다’ 류의 자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식곤증의 머리채를 쥐고 혈투를 벌이고 있을 당신을 한 방에 깨울만한 사건이 있었느냐 하면, 송구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만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을 스위핑 하다 보니, 문득 이 앱이 생각보다 심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으론 그저 손가락 하나로 화면의 왼쪽과 오른쪽을 가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행위였습니다. 내가 관계 속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죠. 그러니까, 틴더는 욕망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사진 몇 장과 관심사, 별자리, 혈액형, 취미 같은 키워드만으로는 상대에 관해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내가 찾는 정보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잘생긴 얼굴이나 탄탄한 몸은 다홍치마 같은 것이라, 잘나면 좋은 것이구요. 취미 혹은 취향도 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액세서리처럼 전시하며 그럴듯하게 자기를 스타일링하는 게 오히려 시시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내가 관계를 통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계속해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내게 물었습니다.


몇 번의 매칭이 이루어지고, 나는 그들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다가 곧 앱을 지워버렸습니다. 의외로 가장 먼저 깨달은 건 내게 연인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별히 곁에 누군가를 두어야 할 만큼 내 인생이 밋밋하지도, 외롭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타나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나는 매일매일이 새롭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또 오늘과 다를 겁니다. 새로운 나날에 마음을 빼앗긴 요즘, 굳이 불필요한 관계를 하나 더 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습니다.


더불어 내가 원하는 건 '일상을 성실하게 영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의 동료들처럼요. 대단한 꿈이나 목표보다, 먹고 입고 사는 생활의 중요성을 아는 상식적인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자기 공간을 깨끗이 돌보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옷을 깔끔하게 다려 입고, 주변 사람들과 삶을 기꺼이 나누며, 반려 식물이나 동물을 돌볼 여유가 충분한 그런 사람이요. 이걸 시간 낭비로 여기거나 귀찮게 여기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이게 당연한 것 같아도 참 어려운 일이더군요. 나는 생활을 잘 가꾸는 사람들을 동경합니다.


결국 내가 욕망하는 것은 틴더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진과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 알기엔 어려웠죠. 그래서 미련 없이 앱을 지웠습니다. 자극적이고 신나는 소식을 전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래도 오늘 오후 두 시엔 당신도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관계 속에서 욕망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이죠. 슬쩍 틴더를 깔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게도 말해주세요. 당신이 찾아낸 것은 무엇인지 말이에요.


2022년 4월 3일

사과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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