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

아줌마들은 장을 보러 다닌다

by 고스무 도우치

아저씨들에 이어 이번엔 아줌마들이다.


어린아이로서 아파트에 살면 아저씨들보다 몇 배씩은 자주 아줌마들을 마주치게 된다. 학교를 마친 후 학원에 가거나 친구와 노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던 초등학생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 늘 만나는 아줌마 몇 분이 계시기 마련이다. 특히 나처럼 엄마를 따라 매일 같이 장을 보러 다니던 어린이들은 엘리베이터에서 아줌마들의 칭찬과 귀여움을 독차지하기 마련이다. 나를 귀여워해 주시던 것은 특히 7층 아줌마와 11층 아줌마셨다. 아저씨들을 '김병지' '외발' '조폭' 등의 별명으로 부른 것과는 달리, 나는 주로 아줌마들 앞에 층수를 붙여 불렀다.


단 예외가 있다. 2층에 살던 '벤츠 아줌마'다. 2층에 살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벤츠 아줌마와는 대화를 나누어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 아줌마의 신상 정보의 일부를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그 아줌마와도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그 집안 소식을 알고 계셨던 걸까.)

벤츠 아줌마는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가끔 나는 8층에서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내려와 친구네 집으로 달음박질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2층 현관문 앞에 빼곡한 우산꽂이를 본 것도 같다. 그 많은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아줌마께 수업료를 내고 공부를 했다고 하면, 그 수입도 장난이 아니었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어른은 어른인가 보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줌마는 당시 더 흔하지 않던 외제차인 벤츠를 사신 거다. 그래서 벤츠 아줌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벤츠 아줌마보다 더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하던 이 소중한 아줌마들을 왜 단지 7층 아줌마, 11층 아줌마로 불렀을까. 더 예쁘고 귀여운 별명을 붙여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저런 별명을 궁리해보아도 아줌마들의 별명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또 한 명의 아줌마는 옆집 아줌마다. 우리는 이 옆집과 20년 넘게 옆집으로 지냈다. 그 20년의 세월 동안 각각의 집안이 겪은 질풍노도를 서로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고, 알면서 모른 척하기도 하며 그렇게 지냈다. 옆집 아줌마의 특이점은 종교생활에 있다.

아무리 옆집이라 하더라도 서로의 집을 오갈 만큼 친하게 지내지 않은 우리 두 집이 서로의 집 풍경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때가 일 년에 두 번 있었다. 바로 명절 때이다. 우리 집은 꼭 제사를 지내는 집이고, 옆집은 제사는 지내되, 절은 하지 않는 천주교 집안이었다. 조용히 있는 것으로 상부상조하며 지냈던 이웃인 8층의 두 집이 약간의 마찰을 빚게 된 것도 다 제사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전통 제사를 지냈으므로, 제사 음식 중 일부를 잘라내어 '까치밥'으로 바치는 '헌식'이라는 의식을 지냈었다. 까치밥을 현관문 앞 복도에 둔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옆집 아줌마께서 불만을 표하셨다. 이런 게 바로 종교 갈등인가. 다행히 전쟁과 같은 큰 갈등은 없었고 조심해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적이 있었다.

8층의 종교 갈등 이후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엄마로부터 옆집 아줌마가 개종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엄마는 대체 이런 소식은 언제, 어디서 듣고 오시는 걸까.) 한 번은 엄마와 시내에 다녀오는 버스에서 옆집 아줌마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줌마는 절에 다녀오신다며 회색의 헐렁한 법복 바지를 입고 계셨다. 작은 크기의 백팩까지 매신 모습이 정확히 불심 가득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아줌마의 개종에는 나와 우리 가족은 알지 못하는 굴곡의 역사가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직접 들은 이야기로는 부족한 한 많은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세상에서 한 번도 말로 표현되지 못한 옆집 아줌마의 눅눅한 애환이 그렇게 했는지도 모른다.


학교 선생님을 하셨다는데 아마 인자한 선생님이셨을 7층 아줌마나 나이답지 않게 키가 크고 자세가 꼿꼿하신 11층 아줌마나 벤츠 아줌마나 불심 깊은 우리 옆집 아줌마나, 내가 만난 우리 아파트 아줌마들은 주로 장을 보러 다니셨다. 아저씨들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저씨들이 회사나 사업장에 간 사이, 아줌마들은 가족들의 끼니를 책임지기 위해서, 집안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가족들에게 필요한 일을 대신 처리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집과 가정의 대소사를 관장하기 위해서 장을 보셨다. 혹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알지 못하거나 생각해보지 않아서. 내가 댈 수도 없는 얼기설기하게 복잡한 이유로. 혹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창조적인 이유로. 벤츠 아줌마도 벤츠를 타고 이마트로, 홈플러스로, 동네 시장, 큰 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니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을 하는 여자가 될까, 장을 보러 다니는 여자가 될까. 일도 하고 장도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장을 보는 일을 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참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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