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

아저씨들은 왜 낮에 보이지 않는가

by 고스무 도우치

우리 아파트 라인에는 총 40세대가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40명에 가까운 아저씨도 살게 되었다.

오빠와 나는 따로 또는 같이 아저씨들의 외모와 행태들을 관찰하며 지냈다.


1층에는 '김병지 아저씨'가 살았다. 진짜 김병지는 아니고. 김병지 아저씨가 김병지 아저씨인 이유는 아저씨의 머리 모양이 소위 말하는 '병지컷'보다 훨씬 더 김병지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김병지의 자세한 얼굴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 사람이 김병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았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우리 아파트 김병지 아저씨의 주말 취미가 축구였다는 사실이다. 김병지 아저씨는 주말 아침이면 축구 유니폼을 입고 축구공을 차며 나왔는데, 그 옆에는 작은 남자아이가 늘 따라다녔다. 아마 김병지 아저씨의 아들이었겠지. 그리고 그 소녀의 머리는 축구선수 김병지의 머리를 닮은 우리 아파트 김병지 아저씨의 머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병지컷'이었다.


취미라고 하니 '외발 아저씨'도 떠오른다. 외발 아저씨는 정말 발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외발 자전거를 거의 매일 같이 연습하였기 때문에 우리 남매의 이웃 사전에 '외발 아저씨'로 등재되셨다.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는 외발 아저씨로부터 성실성을 배웠다고 하겠다.


우리 아파트 라인의 아저씨라고 하면 단연 '조폭 아저씨'가 제일이다. 조폭 아저씨가 진짜 조폭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엇비슷한 직업을 가졌을 것이라는 데 대해 그럴듯한 정황은 있었다. 두피 가까이 바짝 깎은 머리, 자줏빛 색안경과 현란한 무늬의 반팔 니트와 일수가방(아직 클러치가 아니었다). 이러한 '조폭' 패션과 더불어, 때때로 그 옆에는 아저씨에 비해 너무 젊고 늘씬한 여성이 함께였다. 또 하나의 증거. 조폭 아저씨는 다른 집 아저씨들과는 달리 대낮에 집에서 나와 출근을 하시는 듯 지하주차장으로 슬렁-슬렁- 걸어가곤 했다.

아마도 어느 늦은 밤, 고등학생이던 우리 오빠는 조폭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되었다. 예절 교육에 특화된 우리 집 자녀답게 오빠는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했을 것이고, 조폭 아저씨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폭 아저씨는 오빠에게 한 마디를 하시는데, 그 한 마디가 결정적인 증거다.

"공부 열심히 해. 그래야 나처럼 안 돼."

오빠는 식탁에서 이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전해주었다. 이후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오빠는 재수를 하게 되었다. (어쨌든 군대도 갔다 오고, 유학도 갔다 오고, 현재는 성실한 직장인이 되어 있음.)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과 온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러면 아줌마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아이들은 많이 보이는데, 아저씨들은 많이 없었다. 아저씨들은 왜 평일 낮에는 보이지 않을까?

당연하다. 그 아파트에 사는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계속 그 아파트에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집 바깥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어린 시절 가장 만나기 힘든 아저씨는 우리 아빠셨다. 우리 아빠는 하시는 일의 특성상 지방이나 해외에 나가 계시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집 아이들은 우리 아빠를 어떤 아저씨로 불렀을까 궁금해진다. 어쩌면 어떤 아이에게는 우리 아빠가 '조폭 아저씨'였을지도 모르겠다. 옷차림이 조폭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우리 아빠도 가끔 일수가방을 들고 다니실 때가 있었다. 대낮에 나가는 날도 많았다. 덩치가 커다란 남성들 몇몇을 몰고 다녔다. 그러다 한동안은 오래 보이지 않기도 한다. 경찰 피해서 도망이라도 다니는 거 아냐? 누군가는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까.

하지만 사실 우리 아빠는 운동선수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일을 하셨다.



층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아저씨는 언제나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 다니셨다. 풍문에 의하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출신으로, 퇴직 후에는 늘 집에서 아내분과 함께 장을 보러 다니신다고 했다. 대파가 삐죽 튀어나온 장바구니를 들고 웃으면서 우리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던 아저씨를 '장보고 아저씨'로 뒤늦게 명명하고 싶다.

그 아저씨들은 모두 잘 계시려나? 김병지 아저씨 머리는 여전히 병지컷일까? 외발 아저씨는 여전히 주말마다 자전거 연습을 하실까? 아니면 이제 날아다니시는 것은 아닐까. 조폭 아저씨 옆에 그 여자는 늙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젊은 여자가 나타났을까. 아니면 아저씨는 이제 혼자일까.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시던 수많은 아저씨들은 이제 대낮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실까? 혹시 다들 장보고 아저씨들이 되지는 않으셨을까?


이번에 이사 온 아파트에는 대체 어떤 아저씨들이 계시는지 알 수가 없다. 서울 아파트에는 다른 지역 아파트와는 달리, 이웃끼리 인사도 않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서울살이가 워낙 팍팍한 탓일까. 이웃들의 얼굴과 소식을 알 수 없는 것은 서울만의 특징일까 아니면 지금 이 시대의 사정일까. 아니면 나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과 소식을 잘 알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알 수 없게 된 것은 이웃 아저씨들 뿐만이 아니다. 아줌마도, 아이들도 다 모르고 지내게 된 것은 바쁜 아저씨들의 탓이 아니다. 전적으로 나, 나의 탓이다. 왜냐하면 나도 이제 돈벌이가 시급한 30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낮에 아파트 단지를 싸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바빠졌고,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 사는 어린이들이 그 일을 맡아주고 있을까? 여기저기 쏘다니며 만나는 아저씨들에게 별명을 지어주는 일을? 그건 더 이상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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