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의 중간: 8층과 7층의 경우
아빠는 한때 골프 감독이셨다. 할머니의 바람으로 대학교는 의대에 진학을 하셨는데, 운명이 아니었던지 어쩌다 보니 몇 년 후에는 골프숍을 운영하게 되셨고, 그러다가는 골프 감독님이 되셨다. 프로 자격증 하나 없이 지성과 패기와 열정과 아찔한 승부근성만으로 전국에서 다 아는 유명한 감독이 되었다는 전설은 아빠의 입을 통해 들은 바 있다.
나는 골프 감독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른다. 단지 골프 감독이 되면 골프부 학생들을 데리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연습도 하고 전지훈련도 하고 시합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때가 아니면 아빠와 그의 제자들은 우리 집에 함께 살았다.
앞선 글에서 등장한 8층의 거대한 장정들은, 그 활발한 청년들은 바로 아빠의 제자들이었다. 그중 나와 피가 섞인 오빠는 사촌 오빠 단 한 명, 나머지 오빠들은 완전 남이었다. 그 오빠들은 갑작스럽게 팀에 합류하여 몇 년을 우리 집에서 있다가 없다가 하였다. 혼자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화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들고 오는 어머님과 함께 나타나기도 하고,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은 채 그냥 있었던 것처럼 존재하기도 하였다. 그 오빠들과 관련된 추억들이 너무나 많지만 여기서는 거대한 쿵쿵 가족에 비할 것만 이야기하자.
아무래도 운동선수들은 거대한 쿵쿵 가족보다 덩치도 더 큰 편이고, 그러다 보니 힘도 더 센 편일 것이고, 운동선수인 만큼 움직임도 거칠고 활발했던 것 같다. 그 활발함과 산만함과 함께 하는 생활이란 어린 소녀에게는 버거운 것이어서 다른 것에는 별로 신경 쓰지 못했나 보다. 8층의 골프 청년들이 생활을 하는 동안 7층에는 누가 살았던 것일까. 내내 문제없이 지냈던 것을 보면 7층의 가족들도 우리 가족들 못지않게 인내심이 대단했나 보다. 늦었지만 여기서나마 죄송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7층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사를 오고 며칠 후, 새로운 7층 아줌마께서 집에 찾아오셨다고 한다. 음료수인가 양말인가를 들고 오셔서 자신이 건강이 좋지 않아 예민하시다며 조금만 조용히 지내줄 것을 당부하셨다고 한다. 혼자의 몸으로 그 거대하고 활발한 골프 장정들의 끼니며 빨래를 하느라 더 약해지셨을 우리 엄마는 죄송한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또 드렸을 것이다. 그 마음은 알고 죄송하지만 거대하고 활발하고 쉽게 잊고 마는 골프 장정들의 몸은 조심한다고 해서 쉽게 조심해지지 않는 까닭에 아마 7층 아줌마는 내내 괴로우셨을 것 같다. 이 장정들이 하나 둘 집을 떠나고 우리 집이 이제 더 이상은 골프부 합숙소가 아니게 되었을 때 7층 아줌마는 얼마나 기쁘셨을까.
아, 7층 가족들의 강아지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겠다. 이 강아지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번씩 만나면 그 몸집이 아주 작고 약해 보이는데, 밤만 되면 아주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살벌하게 짖고는 했다. 오죽하면 아파트 다른 동의 아저씨 하나가 "개 좀 그만 짖게 해라!"라고 외쳤던 일까지 생겼을까.
이를 통해 알게 된다. 9층의 거대한 쿵쿵 가족의 아줌마께서는 우리 집에게 얼마나 미안했을까. 7층의 몸이 좋지 않은 아줌마께서는 우리 집의 쿵쿵 소리 때문에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우리 모두는 참 잘 견뎠다. 9층과 8층과 7층이 서로 싸우지도,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잘 지냈다는 사실이 조금 과장하자면 기적처럼 느껴진다.
함께 사는 일은 많은 것을 참고 견디는 일, 많은 것을 양보하는 일, 많은 것을 희생하기도 하는 일이다. 함께 사는 우리들은 조금 더 조심해야 하고, 조금 더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그 시절의 9층과 8층과 7층은 함께 잘 해냈다. 이후의 9층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