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돌 Oct 26. 2022

[Interview] 원하는 걸 눈앞에 그려내는 사람

-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요?

현재로 말하면, 내 큰 기준은 퇴사야.

퇴사 전에 이것저것 하고 싶었는데 막상 퇴사하고는 하고 싶은 게 딱 하나였잖아.

처음에는 직장을 한 번도 안 다녀봤으니까 내가 모은 게 큰돈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이거면 3년은 생활비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퇴사 이후에 돈 쓰면서 놀았어. 솔직히 그림을 그린다고 했지만 돈 쓰면서 살았어.

나는 멀티가 잘 안돼. 어떤 사람들은 오전에 그림 그리고 오후에 공부를 한다든지 그러잖아. 근데 나는 그걸 못해서 그중에 뭔가를 먼저 하는 게 나은 것 같아. 사실 그렇게 해도 잘 안돼.

어떻게 살아왔냐는 질문에 나는, 놀면서 지냈다.(웃음)


고등학교까지는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져서 살다가 대학교쯤 와서는 너무 잘난 사람이 많으니까 거기서 살짝 현타가 왔어.

그러다 회사도 다니면서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쓸모는 있구나라고 느꼈어. 왜냐면 대학교랑 회사 사이에 내가 엄청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겠다. 뭔가를 시도하는 게 무서워서 그때는 자존감이 되게 떨어졌었어. 나는 일하는 원동력이 질투거든. 옆 친구가 잘해야 나도 일을 더 잘해.


- 지나간 시기에 대한 후회는 없었나요?

하지 말아야겠다는 건 많은데 더 해보고 싶은 건 없어. 왜냐면 생각보다 하고 싶은 건 다 했어.

난 그게 복이라고 생각해.

엄청나게 갖고 싶은 건 항상 눈앞에 생겼어. 그래서 나는 그게 신기해. 생각해 보면 내가 이제 괜찮아진 이유도 엄마 때문이 아닐까. 엄마가 옆에서 계속 “하고 싶은 거 해.”라고 말해줘서 괜찮아진 것 같아.


-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요즘 서일페 끝나고 외주가 들어와서 끝나고 3주간은 기억이 없어. 3주 전까지만 해도 좀 무서운 거야. 이대로 돈이 안 벌릴까 봐. 왜냐면 이때까지 쓴 돈을 계산해 봤는데 너무 많이 쓴 거야. 그래서 무서웠는데 갑자기 일이 들어와서 지금은 일하는 것밖에 없어.

친구들은 독립했잖아. 가끔 아빠가 “월세 안 내?” 이러니까 쪼들려서 요즘 고민이 그런 것밖에 없어.


돈이 되는 그림, 그거에 대한 고민이 서일페 나간 이후로 더 심해졌어.

왜냐면 사람들이 내가 되게 공들여서 그렸던 작품보다는 단순한 그림을 좋아하니까. 내가 나를 작가로 생각해야 되는지 사업가로 생각해야 되는지 그것 때문에 끝나고 3주 동안을 날려버린 것 같아. 내가 그리고 싶은 건 내 상상을 더해서 그리는 건데 막상 사람들은 그것보다 고래나 오리나 이런 단순하고 명료한 걸 좋아하니까 뭘 따라가야 될지 몰라서 그것도 지금도 고민 중이야. 그래서 내 정체성이 살짝 흔들렸어. 뭘 좋아하고 뭘 하기 싫은 건지 작업할 때 그런 게 고민이지.


- 언제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처음에는 내가 너무 쓸모가 없다는 생각에 당장 일을 하고 싶은 거야. 처음에는 한 달만 다녀보고 생각하자 했는데,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어렵지도 않아서 그때 생각했지. ‘돈을 이천만 원만 모아서 나오자.' 그래도 내 회사는 아니지만 대박이 나면 기분이 좋더라고. 생각보다 재미는 있지만 원래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어. 근데 결국은 서일페에 나가보고 싶어서 퇴사를 선택한 것 같아. 내가 한 가지밖에 못한다고 했잖아.


나는 텀블벅도 하고 싶고 리소 스튜디오도 하고 싶고 달력도 만들고 싶고 그림책도 만들고 싶고 독립출판도 하고 싶어. 근데 내가 살면서 사업을 안 할 수도 있지만 할 수도 있잖아. 어쨌든 회사에서 배운 걸 50퍼센트 확률로 쓸 수 있잖아. 그래서 뭐든지 경험이라고 생각해.


지금은 평소에 정해진 루틴이 있어. 8시에는 일어나. 8시 이후에 일어나면 굉장히 자괴감이 심해. 집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가면 그때부턴 되게 조용해. 내 세상이잖아. 밥 먹고 10시 땡 하면 자리에 앉아. 그건 정해져 있어. 그리고 무조건 12시나 1시에는 누워. 왜냐면 그때 되면 의욕이 떨어져.

엄마가 퇴근을 한시 반에 하는데 엄마랑 1시간 떠들어. 떠들어 줘야 돼. 그날 할당량의 말을 다 못 하면 입이 굳어서 힘들어. 가끔가다가 새로 생긴 카페 있으면 가거나, 내 낙은 장 보러 가는 거야.


-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요?

요새 내가 최대한 행복한 쪽으로 행동한단 말이야. 

예를 들면 굳이 아빠가 싫은 소리 하는 걸 듣고서 똑같이 하지 않고 아빠 생각은 그런 거구나 받아들이려고 해.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하고 있어. 이옥섭 감독이 나와서 말했잖아. 그거 듣고 한 대 맞은 것처럼 저런 사람도 있구나 했어.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너무 먼 미래라 상상은 안 가는데 우선 돈을 모아서 리소 스튜디오 차리는 게 최대 목표야. 이게 35살에 못 이루었다고 해도 50살에 이룰 수 있잖아. 내 그림은 안 늙잖아. 난 그래서 내 직업이 좋은 것 같아.


나는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신념을 말 못 할 것 같아. 그 모순된 사람이 되는 느낌이 싫어.

근데 엄마가 옛날부터 자기는 돈이 많았으면 예술을 하고 싶은데 지원을 못 받는 친구들을 후원해 주거나 유기견이나 유기묘 센터를 운영해서 절대 안락사를 시키지 않고 싶다고 얘기해서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여건만 되면 그런 것도 하고 싶어.


작가면 우선 상상을 해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작업할 때 너무 힘들어. 애들은 나뭇잎만 봐도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하잖아. 내가 학교 다닐 때 제일 힘들었던 게 브레인스토밍이야. 나는 상상을 해도 현실적인 상상을 하지. 신념도 생각해 보면 상상이야. ‘되고 싶다.’잖아.


- 왜 그림을 그리나요?

나는 태생이 되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어쩔 수 없이 나는 나만 생각해.

그래서 친구랑 하는 프로젝트 이름도 ‘MEME'야. 둘 다 자기를 기준으로 작업을 하거든. 그런 걸 보면 나는 한 번도 상대방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린 적은 없는 것 같아. 나는 말도 잘 못하고 연기로 분출하거나 춤을 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림이라고 생각해. 내가 일기 쓰면서 고민이나 불안을 털어놓는다고 했잖아. 글로 써서 날려버리는 것처럼 그림으로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그래서 상대방이 내 그림을 좋아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이유도 나는 공감을 바라면서 그리진 않아서야.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그냥 내 얘기를 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걸 그리고 싶어서인 것 같아.


내 첫 그림에 대한 기억이 엄마가 나한테 그려준 토끼랑 여우야.

나 9살까지 외동이었잖아. 동네도 마을이니까 친구들이랑 노는 거 아니면 혼자서 그림 그리고 놀았거든. 내가 그림 그리고 싶은데 종이가 없어서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웠는데, 엄마가 벽에다 그리라고 했어. 그래서 벽에다 그림 그리다가 엄마가 토끼랑 여우를 그려줬는데 난 그게 너무 강렬했나 봐. 너무 귀여웠어 그림이. 그게 내가 태어나서 첫 기억이야. 몇 살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그 토끼 그림이 기억나.

다음으로 강렬했던 게 초등학교 1학년 때 식목일 기념으로 그림일기를 그려야 했어. 그때 나무를 안 심었는데 그냥 심었다고 거짓말로 그려서 냈는데 그게 최우수상이 된 거야. 단상에 올라가서 상을 받았거든. 그때 살짝 부끄러웠어. 그 기억이 나.  

매거진의 이전글 [Interview] 속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