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진 <동자등 사람들>
1. 뭔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서본 사람은 알 것이다. 대열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해 취해야 되는 조신함과 인내심, 그런데 그 ‘뭔가’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것이라면 그 대열과 줄은 큰 무게가 없겠지만 구호물품이나 생계품 같은 ‘생풀품’ 류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신이 서있는 줄이 마치 동아줄처럼 여겨져 몸과 마음을 그 줄에 맞출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줄에 서있음으로 해서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을 받게 된다. ‘불쌍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줄 세우기’는 그 물건을 받는 자보다 나눠주는 사람의 효율성과 편리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일의 능률을 먼저 따지면 그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받는 사람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그들도 ‘인격’과 ‘자존감’을 지닌 사람들이다.
2. <동자동 사람들>은 동자동 쪽방촌의 사람들의 삶과 생계, 주거, 일상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기록한 르포다. 이 책의 부제는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가’인데, 행정이나 기관에서 단지 물건을 주거나 돈을 준다든지 등 일방적인 주기 식으로는 제대로 된 돌봄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주민들이 직접 살아갈 수 있는 자력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복지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단지 제도만 만들고 유상의 물건을 주기만 한다면 예산만 확보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고, 그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내심도 필요하며, 세심하며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지난한 일은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