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바이올린 영재였었으면 어떡하지..?!
- 취미가 뭐예요?
- 없어요.
- 뭐라도 있을 거 아니에요?
-...(뭐라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 (눈앞의 커피를 마시며) 알고 보니 커피에 대해서 엄청 잘 알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랬으면 좋겠다 이 자식아)
지인의 지인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어떤 남성은 그렇게 물었고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취미가 없는 것을 들키다니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는 나 자신이 어찌나 한심하게 여겨지던지. 때는 스물일곱, 6년 전의 나는 취미 하나 없는 자신을 부끄러워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기똥찬 취미가 뚝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일은 계속되었다. 운명처럼 무언가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저 나에게 맞는 취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취미가 없어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걸 몰랐던 어리석은 청년은 누가 또 취미를 물을까 걱정하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뒤 여러 가지 취미를 갖게 된 그녀는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취미가 모자란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암만 취미라도 시들시들해지기도 하고, 하다 보니 나에게 안 맞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보면 바로 시도해보는 자체가 취미일 수도 있다. 꼭 같은 일을 많은 세월, 뛰어난 레벨로 올려놓아야만 취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글을 보게 된다. '혹시라도 나에게 숨겨진 재능이 있을까 봐 00을 배워본다.' 그 글 밑에는 '00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가르쳐주시는 분이 00 씨가 십 년만 젊었으면 제 제자로 삼았을 거예요.'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한 분야에 굉장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나이가 조금 든 후에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을 여전히 취미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짧은 담화이다. 툭하면 취미를 갈아엎게 된 그녀는 아 역시 취미거리는 많고 아직 나에게 어떤 재능이 숨겨져 있어서 누군가가 열 살만 젊었으면 제자 삼고 싶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구나.(아님)라고 생각하게 된다.
연봉을 좀 준다 싶은 기업은 입사지원서에 취미와 특기를 적는 란이 꼭 있다. 취미가 없던 당시의 나는 괴로움에 빠진다. 물론 지어내면 그만이지만 자소서에 들어간 내용에 상반되는 취미를 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취미가 있다면 문제 되지 않는 항목이지만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꽤 고민이 될 수 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면접 때 질문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만약 취업준비생이라면 입사지원서에 쓸 취미는 우선 정해놓자. (자소서 내용과 상반되어서는 안 된다. 저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취미:등산. 이래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입사하여 돈을 좀 벌고 여유가 생긴 후에 취미가 갖고 싶어 진다면(!) 진짜 취미를 찾으면 된다.
왜 입사지원서에 취미를 적어야 하는 것일까. 취미를 적는 란에 '없음'이라고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사회는 취미가 있을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리고 취미가 없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기도 한다. 나도 무심결에 취미가 없다는 사람에게 취미활동을 이것저것 권해놓고 후회할 때가 있다.
그깟 취미 없으면 어떠랴.
나 좋으면 그만이지.
취미가 없어도 당당하게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그대가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