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은 사태가 정말 심각한 사람이 하는 거 아니야?
언제쯤 알게 됐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서밤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블로그 만화를 우연히 보게 됐다. 평소 보던 웹툰과는 결이 많이 다른 이야기. 그리고 그가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오디오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서늘한 마음 썰>이라는 팟캐스트. 이 프로를 듣고 한 가지 바뀐 게 있다면 바로 '심리상담'의 존재를 알게 된 일. 물론 그 단어 자체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다만 나와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리고 아주 극소수만이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서늘한 마음 썰>은 사람이 살면서 겪는 모든 일에 대해 세 명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특정 일을 겪을 때 마음이 어땠는지에 대해. 세 명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그 일을 겪을 때의 각자의 생각과 느낌, 느낌에 대한 이유 그리고 서로의 생각에 대한 느낌까지 훑는다. 그 어떤 표현보다도 훑는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한 번씩 서밤은 상담받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다. 의도한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확신을 가진 사람이 말하는 그것은 대단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팟캐스트를 들으면 들을수록 심리상담이 받고 싶어 졌다. 그래도 나는 그 일을 계속 미뤄뒀다.
그러니까 세 번째 상담 선생님을 만나는 일을.
처음 용기 낸 날을 기억한다. 서밤의 블로그에는 실제로 상담을 다녀온 사람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리해놓은 전국의 상담 센터 리스트가 있었다. 그중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전화를 했다. 나는 기차 안이었는데 전화를 받은 아주 조용하고 배려 섞인 목소리는 '혹시 어떤 부분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는 공공장소라 이따가 다시 전화해서 말씀을 드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친절한 목소리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기차를 내려 역 광장에서 잠시 고민을 했지만 나는 전화를 했다.
첫 번째 상담.
선생님은 내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나는'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꾸역꾸역 다니다가 5회기 중 세 번째에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하고 네 번째에 취소했다.
두 번째 상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어떤 일 때문에 괴로웠고 전화를 받았던 목소리와 상담센터 자체에 대한 이미지는 좋았다. 전화를 걸어 전에 만났던 상담 선생님이 아닌 다른 분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친절한 목소리는 당연히 그렇다고 한 뒤, 그래도 신경이 쓰였는지 다시 전화를 걸어와 '상담 선생님을 바꾸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고 선생님들도 인지를 하고 있으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해주었다. 그 말이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상담은 한 번 밖에 가지 않았다. 다음에 또 상담 선생님 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두 번이나 실패를 하고 나니 당분간 상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서늘한 마음 썰>의 청취자였다. 진행자 중 한 명이 이상하다. 말투에 왠지 힘이 없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후에 무기력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서밤은 상담을 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본인이 상담받는 이야기를 해주고 다정하게 그의 마음을 살펴주었다. 또 시간이 지났고 그는 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점점 목소리에 힘이 돌아왔다. 내 마음의 목소리는 '너도 가야 해, 알지?'라고 재촉했다. 그렇지만 '두 번이나 노력했어. 어쩌면 다른 도시로 가봐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멀리 가려면 시간도 그렇고 돈도...'
상담을 너무 받고 싶은데 못 받겠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세 번째 상담. 그새 나는 결혼을 했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난 조수석에 있었는데 도로가에 어떤 아주머니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길을 건넜다.
'횡단보도도 아닌데 저 여자 미친 거 아니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아주 열심히 노려봤다. 우리 차는 선팅이 안돼 있다. 아주머니는 이내 내 표정을 보았고 조수석 창문을 툭 쳤다. 나는 폭발했다. 아주머니와 나는 머리끄덩이만 안 잡았을 뿐 시끄럽게 싸웠다. 남편이 말렸고 상대편의 지인인 사람도 와서 말렸다. 그런데 상대편의 지인의 표정을 보는데 갑자기 정신이 차려졌다. 화가 났다던지 질린다던지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성의 끈을 잘 유지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어, 저거 내 표정인데.'
영양사였던 나는 전 직장에서 항상 조리원들의 싸움을 지켜보았고 내 이성만큼은 잘 지키며 그들을 말리곤 했다. 하지만 그들처럼 더 이상 이성을 잘 지킬 수 없게 되었을 때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순간 내가 말리던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말을 멈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만 떠올랐다. '상담을 가야겠다.' 두 번 다시 화가 목적인 화를 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우리 결혼 생활을 위해서, 무엇보다 이성의 끈을 잘 잡고 있던 나를 되찾기 위해.
나는 남편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혼자 가는 게 힘들면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 친절한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그는 마지막에 상담을 받았던 선생님은 사정이 생겨 그만두셨다고 했다. "아 그래요? (잘 됐네요.) 괜찮아요." 다시 찾은 상담센터는 남편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훨씬 편했다. 상담실 안에 혼자 남겨졌을 땐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세 번째 선생님은 내 목소리톤과 비슷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말을 아주 많이 했다. 그녀는 내가 정말 말이 끝났는지 유심히 살핀 뒤에야 말을 꺼냈다. 그는 내가 평소 중요시 여기면서도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디테일'에 강한 사람이었다. 상담 선생님과 단 둘이 있는 곳에서는 신기하게도 평소 내가 장착하고 있는 '보통의 30대 기혼 여성'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나로 돌아왔다. 힘이 없고 추위에 떨듯 작은 바람에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존재. 이야기를 마치고 물컵을 잡는 손이 떨렸다. 선생님은 아주 편한 표정과 말투로 상담을 이끌어주셨고 그 모습은 아주 철저한 자기 훈련으로 이루어진 스킬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상담 선생님이 전국에 몇명이나 될까? 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상담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의 첫 상담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