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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11. 2020

아무도 나를 벌하지 않는다.

나 외에는 아무도.

 



이 힘든걸 어떻게 다 이고 지고 간 단말이지?

이 힘든 마음을 어떻게 추스른 단말이지.




상담을 가기 전 항상 자문했다.

하지만 상담을 다녀오고 나서 부터는 평범한 24시간 중 기분 좋은 1시간 만으로도 꽤 괜찮은 하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렇게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상담이 도움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자주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강하게 느낀 건 어제 다녀온 상담에서였다. (이 글은 꽤 오래전에 시작했다.)


상담 초기, 상담선생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괴롭다고 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이유인즉슨 내가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을 뒤로하고 그제야 나의 행동과 감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상담이 어떻게 나를 도와주겠어? 싶다가도 얼른 상담 가고 싶다. 는 생각을 왔다 갔다 하며 지내온 8개월이었다. 중간에 한 번 별로 힘든 일도 없고, 귀찮아져 잠시 중단한 적이 있다. 중단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금방 다시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짐은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하겠다'와 비슷했다. 미적거리며 한 달 혹은 한 달 반은 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깊이 패인 상처는 그렇게 쉽게 낫지 않는다. 그 위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잠시 안 아픈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꾸준히 소독을 하고 새 약을 바르고 붕대도 갈아줘야 점차 낫게 된다. 또 상처를 방치했던 나는 호되게 혼이 났다. 너무 아팠다.


다시 상담실을 찾은 나에게 선생님은 '대단하다'라고 하셨다. 두 번 찾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다.

"네, 선생님. 정말 힘들었어요." 그날 앞으로는 상담을 섣불리 중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상담 선생님이 만나는 일이 -처음에는 아니지만- 부담이 가지 않는 이유는 나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만약 상담 선생님이 자원봉사자였다면 이렇게까지 솔직하지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하튼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은 나를 꽤나 안심시켜주었다. 돈은 상대방이 나와의 대화를 절대 누설하지 않을 거란 믿음과 나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을 거란 신뢰를 만들어줬다.


선생님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괴롭다던 나는 어느새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진 것을 느꼈다.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과 도움이 필요했다. 결코 쉽지 않다. 원하는 만큼 빨리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해냈다. 수많은 날과 싸우고 화해하며. 선생님의 말을 되뇌며 해냈다. 하지만 인생사 그리 편하게 풀릴 리가 없다.


'팬데믹 코로나 19'가 발발한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매일 야근하는 가족을 위해 난 더 지독하게 집에 있었다.

하려고 마음먹었던 온갖 생산적 활동과 취미, 상담 등 혼자 카페에 가는 소소한 취미까지 모든 게 불가능해졌다. 처음엔 별 일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실천했다. 게다가 가족이 코로나 덕에 야근을 밥 먹듯이 했기에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다시 불편해진 건 3월 초쯤이었다. 머릿속에는 내가 한 일만 오천여 명이 앉아 있는 것 같고 일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나 자신이 구제불능처럼 여겨졌다. 낮잠이라도 자는 날이면 기분이 바닥을 쳤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낮잠씩이나 자다니! 능지처참이라도 달게 받아야만 할 것 같은데...



아무도 나를 벌하지 않는다. 나 외에는 아무도.


 코로나 19가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상담센터도 다시 상담을 재개했다. 나도 가족이고 뭐고 나부터 살아야겠다 싶어 마스크와 손세정제, 알코올 스왑과 함께 상담센터를 다녔다. 최근 느끼는 감정을 선생님은 코로나 블루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안심했다. 이 말이 대단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상당히 중요했다. 지금 힘들어하는 감정이 여태 노력해온 '혼자만의 시간'을 다시 즐기지 못하게 된 것만 같아서였기에. 그 말은 여태 노력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고 알려준 것이다. 여기서 잠깐, 상담 선생님이 "지금 마리 님이 느끼는 감정은 코로나 블루예요."라고 말해주는 건 아니다. 상담만 가면 나의 모든 감정과 상태를 영어를 해석하듯 바로바로 뱉어내는 게 아니다. 이게 바로 상담의 포인트다.


내가 무섭게 여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괴물이 뭔지  볼 수 있게 렌즈를 슬쩍 비춰준다. 선생님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진도를 나간다.


만약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듣고 그 괴물의 정체는 00이에요.라고 알려주셨다면 나는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엥 그거라고요? 아닐 수도 있지 않나요?

아니면 어떡하나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만약 맞더라도 뭔가 다른 게 더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등등 수많은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의 다수가 나처럼 생각이 많고 예민할 것이다.(아닐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선생님은 한 번도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는 없었다. 이야기를 하며 단 한 번도 선생님이 뭘 안다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후에 난 선생님과 이별하게 됐고, 다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말았다.


선생님 제가 고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계실 때 더 충성하고 열심히 다녔어야 했는데. 선생님은 개인 사정으로 (그 사정이 뭔지는 밝히고 싶지 않다.) 그만두셨다. 나는 연인을 잃은 사람처럼 -연인을 잃고도 그렇게 운 적이 없는데...- 펑펑 울었다.

꽃은 선생님이 주신 이별 선물 (나를 잊지 마세요가 아닌 앞으로의 길을 응원한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과 상담을 이어갔다. 한 달쯤 뒤 상담 선생님을 바꿀 수 있냐고 요청했고 다른 선생님과 상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딱 한 번 나간 뒤 그 뒤로 가지 않았다. 두 번째 선생님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신선함도 있고 거기에서 깨닫는 것도 있었다. 나의 선생님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상담 주기는 보통 (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내담자가 정한다. 물론 날짜는 둘의 합의에 의해 정하지만. 나는 당시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받고 있었고 그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선생님은 한 달쯤 되던 날 나에게 상담을 2주에 한 번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저 물어본 것일 뿐이지만...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그런 존재다. 무언가를 거절할 수 없다. 그래서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상담자는 '이걸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권유한 뒤에 꼭, 안 해도 상관없어요.'라고 코멘트한다. 여하튼 당시에는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상담 주기라는 아주 중요한 사안을 그렇게 결정 내리고 나니,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도 있는 사람. 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다음 선생님과 만났을 때는 이미 전 선생님에게 실망한 마음과 상실감도 컸다.


아마도 당분간 누구를 만나건 계속 나의 선생님과 비교를 하게 될 것 같아 상담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분은 나에게 잘 지내시라고 했다. 아마 이렇게 그만두는 사람은 다시 잘 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아시는 듯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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