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Nov 26. 2020

위로는 셀프입니다.

(있지도 않은) 딸에게 쓰는 편지.








딸에게 쓰는 편지.




                                                                                         -마리




네가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


소중한 무언가가 더 소중해지는 일.

보드라운 감촉을 오래 기억하려 애쓰는 일.

따뜻함의 온도가 얼마인지 알려고 하는 일.

궁금하여 자꾸만 마음을 움켜쥐는 일.

떨어지는 마음을 주우려 몸을 굽히는 일.


하지만 끝내는 이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일.


따끔한 눈을 자꾸만 깜빡이는 일.

내려앉는 돌을 가만 지켜보려 애쓰는 일.

허공을 가까이 두는 일.

찰나의 마음을 도려내는 일.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겪어 내어 네 것이 되는 일.


















"저는 딩크족이에요 선생님. 그런데 그게 진심인지 한 번씩 의구심이 들어요." 나는 아기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했다. 그런데 돌아온 선생님의 대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마리 님은, 본인의 아기를 너무 많이 사랑하시네요."


황당했다.

있지도 않은 아기를 어떻게 사랑한답니까 선생님? 속으로 물었지만 선생님의 표정은 굉장히 단호했다.

당황하는 내 얼굴을 눈치챈 선생님은 '물론 지금은 아이가 없지만, 마리 님 안에 있는 아기에 대한 사랑은 존재해요.'라고 덧붙였다. 납득이 갔다. 존재에 대한 의심을 접어두고 그 말을 되뇌었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마치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세상에 내놓은 것처럼 걱정이 되고 또 가슴 아팠다. 커가며 겪게 될 인생의 모진 풍파와 고통이 벌써 나를 아프게 했다.


예전 상담 선생님은 내가 '불행을 막기 위해 아예 싹을 잘라버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아기처럼.

나의 모든 관심과 애정과 열정을 쏟아부으며 애지중지 키워낸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하면 내가 너무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아예 갖지 않는 것을 택했다.


일전에 티브이에 나온 딩크족 연예인에게 누군가 물었다. 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냐고.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이가 삶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무릎을 탁 쳤다. 저거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이는 너무 좋지만 내 아이는 낳기 싫은 그런 마음을 도무지 스스로 정리하기 힘들었는데, 그가 정리해주었다. 아이가 선택하지도 않은 '나'라는 사람 부모가 되었는데 혹시라도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를 것만 같다. 

(나를 원망하는 아이보다 미안해하며 힘들어할 나 자신이 더 걱정다.)


구렁이 무서워 장 못 담그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가능한 한 인생에서 구렁이는 만나지 않는 것이 심신에 좋지"라고 생각하는 안전 염려증이 있는 인간이다. 장 안 담가도 살 수 있는데 굳이? 굳이 담가서 구렁이를 만날 위험을 무릅쓰느니 장 정도는 안 먹고살겠다는 것이다. 한 번씩 먹고 싶고 생각나고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구렁이를 떠올리게 되면 고개를 흔들며 역시 장을 담그는 건 너무 위험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나라는 인간이다. 


물론 출산과 육아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없지는 않다. 위대한 모성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출산과정이, 너무 힘든데 정말 행복하다는 육아가, '저절로 크게 돼있다'는 아이를 인간의 몫을 할 때까지 건사하는 삶을, 감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미 자신이라는 1명 분의 몫을 살고 있는 것도 충분히 벅차다. 한 번 씩 고통에 울부짖고 종종 좌절에 쓰러지며 찰나 같은 행복이 지나가는 우리네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몫의 삶만을 책임지고 싶다.




저 편지는 결론적으로 보면 나를 위해 쓴 편지다. 처음에는 '너'를 타자화하고 썼지만 쓰다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눈시울은 붉어지고 숨은 가빠졌다.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가슴을 쥐어짜는 기분으로 과거를 떠올리고 감당해내기 힘들었던 고통을 떠올리며 내 딸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적어내려 갔다. 적어 내려가다 보니 모두 내가 인생에서 마주친 큰 점들이었다. 그때마다 겪어냈던 감정들을 눈을 감고 떠올렸다. 


여태껏 삶을 견뎌낸 나를 내 아이라고 생각하며 달래주려고 하니 저절로 떠오른 말들이다.


'딸에게 쓰는 편지'는 셀프 위로가 되었고 치유받은 기분으로 글을 마무리하게 됐다.

치유를 원하는 자여. 시를 쓰세요.

작가의 이전글 귀여운 인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