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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인 하루 Oct 26. 2022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라고요

호불호

오이없는 세상

“편식하는 거야 자기? 골고루 먹어야지”

“저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때는 회사 전체회의시간. 점심으로 나온 서브웨이 샌드위치에서 미간을 찡그리고 오이를 골라내고 있던 내가 상사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엄마뻘쯤 되는 그녀는 편식하는 자녀를 훈계하듯 내게 가벼운 핀잔을 주었다. 괜찮다. 내겐 편식 잔소리꾼들을 맞닥뜨릴 때 쓸 수 있는 대응 규칙이 있으니까. 긴말 없이 오이 알레르기라고 하는 것이다. 내게 오이 알레르기는 없다. 그러나 병명을 붙이면 잔소리꾼들은 머쓱히 대화장을 빠져나간다. 그럼 난 편히 오이를 골라낼 수 있는 것이다. 


오이를 언제부터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이유식에도 잘게 다져 골고루 먹였다 했다. 음식의 기호를 선택할 수 있었던 어느 날부터라고 해두자. 오이에 대한 강렬했던 첫 기억은 유치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나리반 6살이었던 나는 선생님께 분명히 경고했다. “오이 싫어요. 못 먹어요”  그녀는 나의 말을 채소를 싫어하는 여느 아이들의 가벼운 투정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알았어야 한다. 내가 편식하는 어린이가 아녔음을. 모든 채소를 잘 먹는 어린이였음을. 그렇게 억지로 오이를 먹자마자 둥근 원형 테이블에 크게 전을 부쳤다. ( 토를 했다 ) 


대체 오이 하나를 못 먹는 것이 무슨 큰 문제였을까.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았던 엄마는 학부모 상담을 다녀온 후 문제로 받아들였다. 오이를 먹이기 위해 오이를 잘게 다녀 볶음밥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웩) 당연히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내가 내손으로 오이를 입에 넣었던 건 (거의 최초이자 마지막 기억이라 생생하다 ) 초등학교 4학년 때 점심시간이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을 정말 싫어했던 나는 잔반을 남기면 벌을 주겠다는 그녀에 맞서 보란 듯이 오이소박이를 입에 넣었다. 열한 살의 자존심이었다. 그때의 오이의 악취 ( 적어도 내겐 )가 , 그 식감이 또렷이 기억난다.  그날 종일 속이 메쓱거리고 불편했다. 그 후론 차라리 벌을 받는 것을 택했다. 


오이가 들어갔던 김밥도 먹지 못한다. 갔던 이라 함은, 오이를 넣었다 빼도 그 향이 남아 먹을 수 없다는 말이다. 오이의 자취가 남은 김밥을 먹느니 굶는 게 났다. 오이와 한 가족인 수박도 내겐 비슷하다. 여름에 엄마가 해준 시원한 수박주스를 다 버렸던 불효의 날이 떠오른다. 오이를 비롯 오이 친족들까지 내겐 혐오의 대상이다.


나의 이런 유난함을 주위 사람들이 배려를 해줬다는 것은 시간이 꽤 지나서부터였다. 오이가 들어갔는지 모르고 시킨 음식 위에 오이가 있으면 재빠르게 오이를 먹어치워 주는 친구들. 식사가 시작되기 전 재빠르게 오이를 쏙쏙 골라내 준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하고 싶다. 아빠가 오이냉국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내가 독립을 하고 나서였다. 종종 아빠가 오이를 먹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여름마다 찾는 음식이라는 건 전혀 몰랐다.

“아빠가 오이냉국을 좋아한다고?” 무려 이십구 년 만에 알게 된 사실에 크게 놀랐다. 집에 오이 냄새가 날까 봐 많이 참아온 것이었다는 것을 집을 떠나서야 알았다. 


오이 혐오인을 배려해준 주변인들 속에 크게 다치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온 나는 이따금 마주하는, 일명 편식 잔소리꾼들과 씩씩하게 맞서 싸워왔다. 지금처럼 오이를 못 먹는 사람들이 수면 위로 나오기  훨씬 전부터 단련되었기에 편식쟁이로 몰아가는 누군가가 있어도 웃으며 상대해줄 수 있다. 다만 굳이 알레르기가 없어도 못 먹는 음식이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먹을 수 있어도 내 혀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건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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