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롬아카이브와 함께했던 작은 팝업스토어의 이야기를 더해볼까 한다. 기획안까지 작성한 열정때문이었을까. 자연스럽게 팝업스토어의 디자이너이자, 기획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회사였다면 여러 부서가 함께했을 일을 브랜드 대표와 나 둘이서 머릴 맞대고 다 하려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 바빴던 초여름, 어느 때보다 밀도 높았던 그 시간에 배운 것들이 참 많았다.
어떤 과정으로 어떤 것을 얻었는지 정리해 보았다.
컨셉
팝업스토어는 그동안 애정을 준 고객들에게 선사하는, 일종의 THANKS TO 개념의 이벤트였다. 그러니 여타 팝업스토어처럼 큰바 이럴 효과나, 어마어마한 매출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매출은 중요한것이었다.
나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전개해 온 브랜드인 점을 참고하여 입점한 플랫폼 및 인스타그램에서 구매 고객들의 소비자 언어를 분석했고, ‘정성’과 ‘작가’ ‘자연’이라는 컨셉 키워드를 뽑았다. 이 키워드를 기반으로 팝업스토어가 작가가 직접 작업하는 공방에서 열린다는 점을 고려해서 ‘Artist’s room’, 즉 작가의 방이라는 팝업스토어 타이틀을 짓게 되었다. 이렇게 단 몇 줄로 정리되는 과정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그 과정엔 수많은 대화와 리서치가 있었다.
그 컨셉으로 나온 것들
1) 굿즈
친구도, 나도 여러 팝업스토어에 가서 불필요한 쓰레기가 생긴 경험이 있었다. 쓰지 않을 스티커, 리플릿, 명함 등… 팝업스토어에서 나오는 굿즈는 절대 쓰레기가 되지않게 하자, 진짜 가지고 싶은 이들만 가질 수 있도록하자. 그것이 아주 작은 초콜릿 일지라도.
리플릿
롬아카이브의 제품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사용해 보며, 또 실제 구매자들의 후기사진을 보며 제품이 오브제이자, 일상 소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생각은 일상 속 행복이라는 컨셉으로 도달했고 나는 구체적인 비주얼을 그릴 수 있었다. 리플릿 내지에 롬아카이브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목화솜 컵을 리소그래피로 인쇄하고 컵에 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 녹차티백, 꽃, 얼음 ) 그리고 작가 시점의 일기를 적고, 리플릿 테두리를 찢어 작가의 영감 노트인 것처럼 연출했다. 리플릿과 포장지에 사용된 종이는 흙을 떠올릴 수 있는, 입자가 보이는 미색의 종이였다. 이 종이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종이를 만지고 들여다보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종이를 찢고, 친구는 실로 바인딩하며 만들어진 핸드메이드 리플릿. 당연히 리플릿을 마다하는 고객은 없었고 인스타그램 후기에서 리플릿은 항상 등장했다.
책갈피
구매 고객에게 증정되는 한정 책갈피는 꽃잎 모양을 형상화하여 구워낸 도자기 책갈피였다. 친구가 구매 고객 선물을 책갈피로 정했다는 ‘말’만 들었을 때 의아한 마음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와!’였다. 꽃잎의 모양을 한 도자기 책갈피는 롬아카이브의 정체성을 (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자연물 ) 가득 담고 있는 정성 어린 선물이었고, 금새 동이났다.
초콜릿
손님들이 팝업스토어에 들렸다가 머쓱히 나가는 모습을 보고 기획한 작은 선물이었다. 패키지용지로 쓰고 남은 종이로 작은 초콜릿을 둘둘 말아 작품을 구경하듯 구경하고 있는 손님들께선물로 나눠줬다. 아주 작은 선물이었지만 깜짝 선물에 다들엄청 기뻐했고, 인스타그램에도 업로드 되었다.
2) 고객경험
작가와의 차담 이벤트
인스타그램 신청으로 10명 남짓 소규모 인원만 모아 작가와 차를 마시는 차담이벤트를 기획했다. 친구가 가장 하고 싶어했던 이벤트로 이른 오전 시간 일정에도 빠르게 예약인원이 찼고, 99퍼센트 인원이 참석했다. 친구는 여기서 편지를 낭독하길 원했는데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이 편지 낭독 시간의 그리 찬성하지 않았다.
”너무 오글거리지 않아?”
나의 장난반 진담반 섞인 만류에도 친구는 이 시간을 강행했고 그 반응이나, 분위기는 내가 예상했던것과 달랐다. 내가 놓친것은 바로 ‘어떤 이들’이 이 이벤트에 찾아올지에 대한것이었다. 작가의 편지 낭독 시간의 모든 참여자가 ‘경청’했다. 나는 비 오는 주간의 주말 아침 먼 길을 달려 이곳에 왔을 그들의 애정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방문해 주었던 고객들은 우리가 의도했던 것처럼 공방 구석구석을 즐겁게 구경했고, 작가의 말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어색해서 손발이 배배 꼬이는 그런 시간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타깃에대해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브랜드 당사자가 생각하는 범위와 깊이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어떤차를 어떻게 내놓을지 심사숙고했던 친구의 마음이 전해졌다는것은, 매장을 나가는 사람들의 들뜬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결제와 기다림의 경험
브랜드만의 색이 강한 브랜드일수록 사소한 고객 경험까지 설계되어야 한다.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공방을 드나들었던 그 순간부터, 컨셉이 정해지기도 전부터 나는 제품을 구매하고 포장을 기다리는 그림을 그려뒀었다. 포르투갈 리스본 여행 중 우연히 들어가게 된 빈티지 가게였는데 그곳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지만, 제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하던 주인 할머니, 포장지, 계산대는 더더욱이 아름다웠다. 그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며 내가 경험했던것을 고객도 경험 할 수 있도록, 계산대를 배치했다. 가위 하나, 포장지, 실 하나도 아름답게 두었고 포장하며 고객들에게 어떤 질문을 언제할지도 계획했다.
배운것
1) 매출보다 중요한것
제품 라인 중 리미티드 에디션은 모든 제품이 다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희소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지속적으로 판매 상황을 업로드 했다. today’s pick이라 붙여 오늘 내 눈에 잘 들어오는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고, 빠르게 팔린 제품을 올리기도 했다. 이 활동으로 고객 반응을 확인할 수있었다. DM으로 예약한다거나, 선결제를하고 팝업에 방문하겠다고 하는 고객들이 꽤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브랜드 대표인 친구의 반대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했다. 그 제품을 사러 멀리서 달려온 고객들에게 예의가 아니고, 브랜드 진정성 문제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땐 그럼에도 판매증진을 하고 싶었기에 아쉬웠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친구가 맞았다. 매출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브랜딩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눈앞의 매출에 앞서 짚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친구를 통해배웠다.
2) 나는 디자이너보다 기획이 더 맞다.
협업하며 내가 놀랐던 것은, 어떤 업무보다 디자인적으로 작가 친구에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광고주의 입맛대로 이런저런 디자인을 했던 나와 달리, 본인만의 색으로 오랜 시간 달려온 이의 감각은 아주 단단하고 선명했다. 원하는 방향이 만나왔던 그 어떤 광고주보다 명확해서, 키 비주얼을 디자인하는데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손으로 만든 비주얼이었지만 그녀의 감각이 80퍼센트는 담긴 비주얼이었다. 나의 장기는 ‘기획’, ‘스토리텔링’이라는것이 확실해졌다. 디자인보다 브랜드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때, 사람들을 이끌 때 더 희열을 느꼈다.
3) 잘했다면 좋았을 것
온오프라인 연계
그 평범한 해시태그 이벤트 하나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온라인 거점의 고객들을 이끄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도록 유도할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데이터화
총 몇 명이 방문했고, 몇 명이 구매로 전환했는지 정확한 수치도 체크할걸. 하는 것은 지금의 회사에서 팝업스토어를 경험해 보며 깨달은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아주 오랫동안 내 커리어에 남을 것이다. 어떤 면접을가도 가장 자신있게 말하는 프로젝트였다. 규모는 그 어떤 경험보다 작았지만 내가 시간을 통해 얻은것은 보다 더 큰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잘하고싶은지 자신있게 말 할 수 있게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스텝을 꿈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