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왜 해? 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까지
직업을 바꾸기까지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꾸준히 이것저것을 해왔지만 ‘성과’는 없는.
“그거 왜 해?”라는 질문만 무수히 받았던 이것저것의 일들.
그런 시도 중 ‘작가의 방’ 롬아카이브 팝업스토어는 작지만, 어느 정도 수치적 성과를 낸 유일한 것이었다. 작은 규모지만 그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간의 무용한 시도가 쌓여 디딤돌 역할을 했을 것이라,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의 ‘ 점들을 이으면 선이 된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점들이 결국 모여 어떤 것이 된다는 그 말은 언제나 내게 위로가 되었다. 나의 진로 탐색 기간이 아마 평생이 될지라도, 결국 어느 점에 이르리라, 그리고 다시 출발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의도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내 위로 신념으로 잘 사용 중이다.
아무튼.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이것저것을 해왔을까?
1) 버려진 것들 전시회 기획
언제? 대학생 편집동아리때.
기획의도 : 일상의 쓰레기에 대한 재조명
개요 : 폐매니큐어, 연필 가루, 버려진 휴지, 영수증… 등 일상에서 버려진 것들로 타이포 디자인, 인근 대학 컴퓨터 공학과 학생들과 연계하여 전시장에서 직접 타이핑 할 수 있도록 기획. 박노해 시인의 ‘별은 너에게로’ 시 구절을 활용, 버려진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조명
담당 역할 : 메인 kv 디자인 및 전시 컨셉 기획
대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였다. 당시 나는 학과에서 나름 유서 깊은 편집 동아리였는데 편집디자인 수업 점수는 가장 낮았고, 흥미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가장 흥미롭게 기획했던 전시였다. 동아리 생활 중 이 전시만 기억에 남는 거로 봐선 전시 말고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 분명… 당시 컨셉을 기획하고, 그 컨셉에 맞는 텍스트를 작성하는 데 더 심혈을 기울였던 것 같다. 어떤 시를 써야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될지. 전시 제목을’ ‘버려진 것들’로 하고 전시의 운영시간을 밝은 ~시, 어두운 ~시로 표현하는 등 글의 감도에 더 신경을 썼다.
2)만남의 광장 : 운동회 하나 하고싶은데..?
언제? 2019~2023연 1회 ( 총 3회 진행 )
기획 의도 : 늘 보던 친구와 술 마시는 것이 끝인 나의 여가생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소리 지르고 땀 흘리며 놀아보자.
만남의 광장은 ‘날도 좋은데 운동회나 한번 하고 싶다.’ 에서 시작된 이벤트였다. 친한 친구들 말고 친구의 친구나 친구의 친구의 친구… 까지 이어져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1회는 그렇게 난지 한강공원에서 이루어졌다. 운동회 컨셉이니 흑 팀 백팀으로 꾸려 포스터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었고, 몸으로 말해요, 수건돌리기 등등 여러 오락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필수 규칙은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까지 개인정보는 누설하지 말 것. 이름은 부여된 애칭으로만 소통할것. 1회 때는 피카츄, 오징어, 거북이 등등 특별한 컨셉이 없었고 2회에는 숙자, 말자, 영숙, 민수 상식 등 ( 나는 솔로 닉네임 원조다 우리가 )을 부여 3회에는 에드워드, 에이미 등 이었다. 어느 순간 게임이 겹치게 되고 딱히 특별한 아이디어도, 시간적 여유도 없어 작년을 끝으로 진행하지 않고 있지만, 또 날 좋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
3) 교환 에세이 '흑백논리'
기획 의도: 사소한 주제를 진지하게 파고들어 보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하는 태도에 지쳐 기획. 나의 주관과 가치관의 색을 선명하게 만들어 나가자.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친구와 브런치에 연재했다.
개요: 흑과 백처럼 명백히 다른 두 생각을 다룬 짧은 에세이.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친구와 써 내려간 릴레이 글쓰기. 그 친구의 글맛이 좋아서 내가 하자고 졸랐다. 목표였던 10개를 달성하고 현생이 바빠 유야무야 종료되었지만… 브런치에 아트워크 + 글쓰기 수업 교환 일기
이 산발적인 이것저것의 점들이 결국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내 삶의 자양분이 된다. 객관적으로 그 일이 실패로 끝났거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 할지라도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배움’을 얻게 되는것이다.
만남의 광장은 그저 단순 오락을 위해 시작한 거지만 3회째 거듭하면서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지를 고민하게 했다. 이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얻은 인사이트는 ‘확실한 컨셉과 브랜딩’은 사람들을 이끈다는 것이었다. 예능에서 볼법한 각종 오락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이 이벤트의 차이점은 매회 장소와 시간에 따라 그 컨셉이 달랐다는 것이었는데, 난지한강공원에서 이루어졌던 1회는 운동회 컨셉이었기에 흑백 팀을 나누고, 종이 손목 끈도 만들었다. 2회는 을지로 한복판 루프탑인것을 고려해서 키 비주얼을 잡고 팀을 구분하는 표식도 야광 팔찌로 구분했다. 닉네임은 일부러 올드한 숙자, 영자 상식.. 등으로 지어 야경이 눈부신 을지로의 레트로 감성과 어우러짐과 동시에 재미 요소를 더했다. 3회의 타이틀은 섬머나잇, 여름밤 해방촌을, 야경을 배경으로 진행되었다. 오래전부터 외국인이 많은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서 아주 올드한 느낌의 외국 이름을 선정했다. ( 미란다, 에드워드 이런… ) 역시나 입장할 때 손목띠를 제공했다. 3회차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초대장을 노선으로 만든 것이었다. 익명성의 규칙 등등 파티의 규칙을 키 비주얼과 함께 정리한 이 초대장을 보고,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몰려온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여기까지, 나의 이것저것의 일대기. 누군가는 그걸 왜 해? 라며 핀잔을 주기도 나 자신도 이걸 왜 하는 걸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꿈보다 해몽이라 했다. 나는 이 이것저것을 통해 나도 모르게 어떤 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 그거 왜 해? 에대한 답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