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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인 하루 Jan 20. 2024

서른이 늦었나요? 녜니오.

서른 살을 맞이한 누군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다고 하면 나는 아주 맛있고 든든한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 술을 즐기는 이라면 와인도 한잔 곁들여서. 생각보다 그길이 그렇게 순탄하지 않기때문이다.


서른은 스무살이었던 내겐 아득하고 성숙한 나이였다. 상상을 구체적으로 하는편이라 잠시 풀어보자면, 그 나이의 나는 미니쿠퍼 블랙과 서울 내 20평 내외의 연식 오래된 아파트를 보유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상스러운 말은 쓰지 않으며 차분하고 4개국어 쯤은 하는 그런 지적인 여성 말이다. 아니 적어도 '킹 받네' 이런 말은 안 쓸 줄 알았지.


그리고 실제 나의 서른은… 리셋 버튼을 누른 것 마냥 처음으로 돌아갔다. 퇴사를 하자마자 태국 꼬따오 여행을 준비했다. 그 낙원같은 곳에서 신나는 여름을 보낸 후, 무성했던 가로수 이파리도 떨어져 나가고 내 통장 잔고도 비어져가던 때.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백팩에 노트북만 넣어 일단 스타벅스로 향했다. 유튜브만 보고 오더라도 그렇게 나갔다. 가서 뾰족한 목적도, 별 반응도 없는 글을 브런치에 쓰기도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아득한 어느 날엔.이 모든 것을 끝냈을 땐 네이버에 해외 유학, 마케팅 석사, 마케팅 취업, 비전공 마케팅, 부트 캠프… 따위를 검색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알고리즘의 덕으로 서울 산업 진흥원에서 진행하는 마케팅 수업을 발견했다. 다른 것보다 뭘 해야 할지 모르던 차에 무려 무료라는 점...이 아주 컸다. 사실 그땐, 무언갈 기획하고 그런일 을 하고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공부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던것 같다. 그 교육을 신청하고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던 날은 디자이너 면접 합격 소식을 받은 날이기도 했다. 불안함에 몸부림치다 면접을 본 회사였다.아주 짧은 고민을 뒤로하고, 조금 돌아가는 마음으로 나는 교육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신입으로 돌아갔다. 때아닌 1분 자기소개서를 만들고 달달 외우며, 이력서를 여기저기 돌리고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러 다녔던 겨울의 나는…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아주 솔직히 두려움이 더 컸다. 신입으로 들어간 회사는 내가 꿈꿔왔던 것과 달랐고, 내 마음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 지나가는 일이다, 네가 선택한 길이지 않으냐, 조급해하지 말아라. 와 같은 주변의 말들은 당시의 나에겐 그저 남 일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조급한 마음과 매일매일 마주해야 하는 당사자에게 그 말이 들릴 리 없었고, 아직도 작게 들린다.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눈들과 말들과, 끝없는 비교와 싸워 내고있고 역시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법칙을 체감하며 그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불과 10개월 남짓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은. 이 모든 조급함과 좌절을 안고도 일단 계속해 본다는 것. 


아무튼, 서른이든 몇살이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을 아주 열렬히 응원해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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