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적인 하루 May 25. 2020

개인주의자의 함께 여행하기03

평양냉면같은 우리의 맨얼굴

'이'(이소영과) '양'(양지은)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복잡하고 많은 단계의 화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외출에 화장은 필수조건이었다. 장기간의 배낭여행이 처음이었던 두 사람은 자연스레 화장을 할 수없었다. 특히 끄라비에선 대부분의 시간을 물속에서, 물밖에서, 바로 옆에서 지냈기에 두 명을 비롯해 우리 모두의 화장은 점점 더 단출해졌고 반강제적으로 화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화장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한때 유명한 코덕 ( 코스메틱 덕후 )였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은근한 강압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애초에 쌩얼이라는 말도 맞지 않다. 우리가 태어나길 파운데이션과 아이라이너 립스틱을 바르고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나. 원래 인간의 디폴트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고 화장은 플러스알파 같은 것이다. 그러니 화장은 죄는 없지만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쌩얼이라고 부르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4년 내내 제대로 접해본 적 없던 서로의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바라보며 깔깔깔 웃었다. 얼굴 하나만으로도 서로에게 엔돌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화장 따위에 구속받지 않은 우리들은 그 덕에 더 많이 웃을 수 있었고 언제든지 물에 뛰어들 수 있었다. 섬 투어를 하는 보트는 폭포수 마냥 물이 쏟아졌는데 우리는 그 누구보다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종종 민낯으로 만났다. 우리들의 민낯은 어플로 찍은 얼굴의 최상치와는 거리가 있지만 나름 심심하고 귀여운 맛이 있다. 평양냉면 같다고 할까. '이게 뭐야?' 하고 심심한 맛에 놀라다가 '오호!'하고 그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되는 것. 소영은 밀림의 왕 타잔 같으며 지은은 생닭 같다. 그녀의 몇 가지 별명중 '치킨런'이 있다. 치킨런의 놀란 얼굴과 그녀의 얼굴의 싱크로율이 100프로에 육박한다. 이것은 그들을 놀리기 위해 하는 진담과 농담이 섞인 말이고 사실 소영은 여름이면 까무잡잡해지는 섹시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본인은 선호하지 않으나 나는 타버리면 그저 덜 씻고 나온 사람이 되기에 탐나는 신체다. 지은은 말갛고 귀여워진다. '귀여움'에서 멀어지는 나이인 지금 자연스러운 귀여움이야 말로 얼마나 귀한 자산인가. 여행이 한참 지난 지금도 우리는 종종 밋밋하지만 진국인 얼굴로 서로를 마주한다.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가벼운 얼굴, 가벼운 웃음이 얼굴에 자꾸 걸린다. 


작가의 이전글 올 때 월드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