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을 응원하며, 마침표
in 가람마을, 카페 아지티
오늘의 날씨와 어울리는 팝송이 나온다.
환한 볕, 불어대는 바람에 가로수 나뭇잎들은 반짝이며 흔들리고 있어.
몇 주 전 목요일, 너의 퇴근시간 즈음이었지.
네 놀란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메시지를 받았어.
거래처 분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고 하였어.
협력 업무 때문에 통화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그분이 화를 내신 적이 있다 했어. 크게 놀랐었다 했지. 그런데 다시 만난 그날, 그분은 지난 사건을 언급하면서 "죄송합니다."하고 정식으로 사과를 하셨다 했어. 너는 참말 좋은 어른을 보았다고, 너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어.
나도 오늘 좋은 어른을 보았어.
갑작스럽게 생긴 휴가에 가까운 친구 몇에게 소식을 전하였는데 그가 이곳으로 오겠다 했어.
뚱한 표정으로 들어와 자리와 위치를 인식시키려고 머리 위로 손을 흔드는 나를 확인한 다음, 말없이 커피를 시키고 앉더라. 참으로 그다운 첫인사였어.
마주한 친구 옆에 2001년의 날카롭고 뾰족하고 예민하고 까칠하던 과거의 그가 동시에 보였어.
"너 참 많이 변했어."라며 말하는 나에게 여전히 뚱하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는 이렇게 답했지.
20대 초중반에는 자기 방식만이 옳았고 20대 후반이 되자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했어. 30대가 되자 다양한 생각과 방식이 존재함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야. 지금의 깨달음으로 20대를 살았다면 훨씬 더 여유 있게, 부드럽게 살지 않았겠냐며 과거의 자신을 안타까워했어.
회사의 여러 일들로부터, 선배의 이야기로부터, 가까웠지만 불편해진 친구와의 관계로부터 끊임없이 성찰하고 강박에 가깝게 반성하는 그를 보면서 네가 발견했다는 '좋은 어른'을 떠올렸어. 그리고 너를 생각했어. 감사했지.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있음이 참 감격스러웠어.
좋은 어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네.
사과할 줄 아는 어른, 반성하며 나아가는 어른이 있어.
사과와 반성이란 꼭 마침표 같다, 생각했어.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고는 다시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게 하는 문장부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제대로 사과하지 못하여 비문(非文)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과 성찰 없이 삶만 나열한 채로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더라.
좋은 어른의 길은 어렵다.
그리하여 나의 장래희망은 '괜찮은' 어른으로 바꾸었어.
이것도 어렵겠지만 말이야.
오늘의 발견은 마침표가 되겠지?
내일은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