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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Jan 05. 2022

하늘을 날고 싶어?

그게 하늘이던 땅이던 어디서든 우리 행복하자.


느지막이 잠에서 깼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오전에 실컷 잠을 잘 수 있어 좋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지. 월요일이고. 1월이고. 방학이구나. 눈앞에 별이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 전 꿈속에서 네 이름을 불렀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꾼 꿈이었다. 요즘 작정하고 잠을 실컷 자다 보니 뜬금없이 자다 깨기도 하고 꿈도 꾼다. 4~5시간 눈을 붙이기도 바쁜 학기 중에는 누리기 힘든 호사다. 꿈속에서 우리는 인천 공항에 있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아이들과 함께도 아니었다. 친정엄마와, 10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빠도 함께였다.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있었고, 어딘가 해외로 떠나려는 것 같았다.


 그다지 설레지는 않았다. 무언가 마음이 분주하고 불안했고, 여기저기를 혼자 헤맸다. 면세점에 들렀던 것 같은데, 뭘 사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타러 어딘가로 들어갔고,  그곳에 들어가니 다시 돌아 나올 수는 없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그때 갑자기 불쑥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

 "별이는?"



 갑자기 각성한 이름. 나의 둘째 아들. 별이었다. 지적장애 진단을 받고, 분리불안이 높아 엄마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이제 열 살이 된 우리 별이. 엄마와 아빠는 태연히, 별이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아 데려올 수 없었다고 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빠는 별이를 만난 적도 없잖아. 그 아이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 태어났다구요. 누군가에게 맡겨졌다는 별이를 찾아 미친 듯이 뛰어나가려고 했으나, 더는 돌아갈 수 없다고 누군가 나를 저지했다. 시간이 이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새근새근 잠자는 별이의 얼굴이 내 코 앞에 있었다.


 자기 전에 들었던 음악의 제목이 'Airplane' 이어서일까. 어젯밤 SNS에서 보았던, 누군가가 비행기 안에서 찍은 구름 사진이 부러웠던 걸까. 어차피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모두들 해외에 갈 수 없지만, 그 이전에도 나는 출국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둘째는 불안이 높아 좁은 공간에 오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제주도로 가는 짧은 비행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활주로에서 공항 건물로 들어오는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엄청난 소리로 울음을 터뜨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폐스펙트럼이라 불리는 영역 안에 있는 별이에게는 환경의 변화가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시리얼을 먹으며 큰 딸 봄이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외여행에 가는 것이 소원인 열두 살 봄이.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나와 둘이 떠나려고 일본 당일치기 여행 티켓까지 끊어놨지만, 결국 코로나로 무산되었던 일이 있었다. 봄이는 꿈 이야기를 듣더니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럼 나는 어디 있었어?"

 "나도 몰라. 그냥 꿈이니까. "

 "뭐야, 너무해."


 며칠 만에 우리 집에 오신 친정엄마와도 꿈 이야기를 했다. 에너지가 넘쳐 집안을 쿵쿵 뛰어다니는 별이에게 엄마가 물으셨다.

 "별이야, 엄마랑 할머니랑 비행기 타고 여행가도 돼?"

 "안돼!!"

1초도 안되어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사랑하지만, 가끔은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어젯밤 나에게는 그것이 육아, 조금 고된 육아, 별이를 키우는 일이었던 것 같다. 가방을 싸서 떠나버리겠다고 꿈속에서 시간까지 되돌려 돌아가신 아빠를 소환했지만, 내 무의식은 별이를 놓지 못했나 보다. 아무리 꿈이라도 너를 놓고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거다.  이제는 꿈에서도 빼도 박도 못하는 엄마가 되어버렸나 보다.


 다시 밤이 되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 늦게까지 가족여행 계획을 짰다.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평으로 우리 네 식구가 묵을 수 있는 방을 예약했다. 이번 생은 더 이상 하늘을 날기는 틀렸는지도 모른다. 별이가 아주 많이 크고 나면 , 친정엄마의 소원대로, 봄이의 소원대로, 나도 다시  해외여행을 가게 될 수 있을지 또 모른다. 하지만 뭐, 땅도 좋다. 우리가 못 가본 많은 곳들에 가서 실컷 뛰고 밟고 즐기고 오자고 생각했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복한 일. 그걸 찾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다행히 당분간 코로나로 아무도 해외에 못 가는 걸 위안으로 삼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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